갈 곳 잃은 호남 표심 “쿼바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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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은 호남 표심 “쿼바디스!”
박치경 수석 논설위원
2016년 10월 12일(수) 00:00
총성은 터졌다. 내년 12월 20일 치러지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전쟁(힘겨루기)이 시작됐다. 지난달 개회한 정기 국회에서 정세균 의장의 개회사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이 불러온 파행. 이를 대선 전초전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차기 대선 구도는 매우 혼미하다. 주요 정당(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3각 체제를 기본 골격으로 ‘비문’(비 문재인)과 ‘비박’(비 박근혜)이 헤쳐 모이자는 제3지대론에다, 새누리당과 특정 정파의 연대론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권 교체든, 정권 재창출이든 차기 대선의 최대 관건은 단연 호남 표심일 것이다. ‘주인‘ 없는 상태에서 대선의 최대 뇌관으로 떠오른 호남 표.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갈 곳 잃은 호남 표심을 경영학의 ‘SWOT’ 원리에 적용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기업이나 투자자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자신의 강점(Strength)·약점(Weakness)·기회(Opportunities)·위협(Threats) 요인을 따져 최적의 선택을 한다. 호남 표의 진로를 이에 대입해 결과를 예측해 보자는 것이다.

먼저 지난 총선 민심처럼 국민의당 후보를 전폭 지지하는 경우다. 호남 표심이 그대로 녹아 있어 선명한 정체성을 토대로 ‘호남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그러나 호남민 스스로도 국민의당 현재 위상만으로 독자적인 대권 획득이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이다. 명분은 좋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의 괴리다. 가장 큰 약점인 셈이다.

그렇더라도 최대 메리트인 호남 민심을 바탕으로 외연 확장 기회는 있다. 당장 야권 단일화 추진 시 한 축이 될 것이고, (국민의당은 극구 부인하지만)새누리당과의 연대가 시도된다면 제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연대 과정에서 흡수되거나 종속될지 모를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다음, 더민주를 밀어주는 경우다. 제1야당의 적통을 잇고,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호남 3석이라는 한계에다, 무엇보다 더민주 대권 후보군에서 가장 유력한 문재인에 대한 거부감이 최대 걸림돌이다.

야권 단일화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욕구는 더민주가 호남에 표를 호소할 수 있는 명분이다. 다만 문재인이 단일 후보가 되면 노무현 정권에 이어 호남 소외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의심과 망설임이 따른다. 특히 광주·전남·북 유권자들의 급속한 고령화는 장애 요인이다. 노년층일수록 ‘친노’·‘친문’ 거부감이 크고, 한번 돌아서면 마음을 잘 풀지 않아 총선 표심을 쉽사리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는 호남 유권자들이 제3지대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국민의당은 힘이 약해 보이고, 더민주는 썩 내키지 않으니 제3의 지대에서 후보를 골라 보자는 것이다. ‘비문’-‘비박’에서 뽑힌 후보가 호남 지지로 당선된다면 지역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호남의 정치적 영향력도 유지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경험칙상 확실한 정파나 지역 텃밭이 없는 제3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에는 범위를 대폭 넓히는 개념인 야권 ‘통합 원샷 경선’이 제기됐다. 문재인-안철수를 포함해 모든 주자가 참여해 사실상 야권 후보의 단일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과 야권 주자의 양자 대결로 대선이 치러지게 되면서 정권 교체 확률이 가장 높아진다. 이때는 호남 표의 비중도 극대화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문재인과 안철수는 싸늘한 반응이지만 나머지 잠룡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문재인이다. 그가 후보로 선출되면 호남이 표를 몰아줄지 장담하기 어렵다. 앞서 거론한 ‘문재인 기피증’ 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되면, 아예 새누리당 ‘친박’ 울타리에서 벗어나 통합 경선에 나서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호남과 새누리당의 연대가 있다. 곡성 출신 이정현 대표라는 연결 고리가 있기 때문인데, 반기문 총장이 후보로 뽑힐 경우 호남표의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반기문 대세론이 형성된다면 이정현 대표 효과와 맞물려 호남 표도 일정 부분 움직일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개헌을 통해 호남 중도 보수세력을 껴안는 ‘영·호남·충청 연합정권’ 구상도 나오고 있다.

호남 표심이 정권 재창출에 기여한다면 지역감정 해소와 동서화합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차기 정부 인사·예산에서 지분을 확보하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것 또한 강점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당장 호남 정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지역 구성원 간의 갈등과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 등 내우외환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 대선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있으니 의외의 변수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운 호남 유권자들은 지금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쿼바디스!”(어디로 가야 하나)

/uni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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