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릴 때 떠나라
![]() |
“여행 생각에 심호흡으로도 심장의 떨림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행을 짝사랑하는 것이고, 여행 중에도 여행을 그리워한다면 이미 여행과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며, 여행에서 막 돌아왔을 때 바로 다음 여행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행에 중독된 것이다.”
호텔에 짐을 막 풀고 나오니 ‘릭샤’(좌석이 딸린 3륜차량)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 운전기사와 곧바로 흥정을 시작한다. 시내 한 바퀴 돌고 오는 데 얼마나 받을 거요? 왕복 200루피, 오케이. 오, 싸다. 200루피면 우리 돈으로 불과 3000원 정도.
이것저것 사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기다려 줄 수 있겠소? 오케이. 운전기사는 다행히 영어 소통이 가능했다. 마이네임 이스 아샤. 홧스 유어 네임? 이름이 아싸라 했던가 아샤라 했던가.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기는 했지만 까무잡잡한 얼굴의 그는 참 친절했다.
우리는 낯선 이국에서 그를 마치 자가용 기사나 되는 것처럼 부리며 여유 있는 저녁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아마도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영업용 택시 기사를 불러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이나 이용했다면 몇만 원도 더 지불해야 했을 테니까.
더군다나 우리 둘은 바로 전날 다른 릭샤를 이용했다가 바가지를 쓴 적이 있었으니. 그날 또한 저녁 무렵 시내 구경이나 하자며 걸어서 나갔던 터였다. 하지만 걸어서 돌아오기엔 무리인 듯싶어 릭샤를 타기로 한 것인데 이 친구는 호텔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빙빙 돌더니 150루피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애초 ‘흥정을 확실히 해 놓은 뒤 타라’는 여행 정보를 알고 가기는 했다. 한데 영어를 모르는 것인지 모른 체하는 것인지 현지 말로 쏼라쏼라 하는 통에, 어떻게 되려니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한번 승차를 하고 나니 그는 돌변해서 호텔 이름을 대도 모르쇠로 나왔다.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호텔까지 돌아오긴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우리나라 또한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교통문화 후진국에 갔으니 바가지를 쓸 각오는 당연히 했어야지.(바가지라고 해 봐야 우리 돈으로 3천 원도 못 되는 돈이지만)
여기는 인도 땅. 그래도 많은 여행자들이 한 번쯤 가 보고 싶어 하는 명상의 나라. “인도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나라. 그래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현인이 부른 ‘인도의 향불’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염불소리/ 간지스강 푸른 물에 찰랑거린다/ 무릎 꿇고 하늘에다 두 손 비는 인디아 처녀/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아∼ 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인도의 교통수단은 다양했다. 앞서 우리 둘이서 함께 탄 것이 바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오토 릭샤’였다. 자전거 뒤에 좌석을 만들어 페달을 돌리는 릭샤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말이 끄는 마차도 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대부분 에어컨도 없는 낡은 버스가 굴러다니는데, 심지어 6·25 당시 피란 열차처럼 승객들이 버스 지붕 위에까지 올라타고 가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40도 가까운 폭염 속에서 하루에 네댓 시간씩 걷고, 또 네댓 시간씩 버스를 타야 하는 고난의 여행길. 그래도 뭐 사서 하는 고생이니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타지마할’ 한 군데 본 것만으로도 본전은 빼고 남을 것이니.
듣던 대로 인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로 뽑힌 타지마할은 장관이었다. 파란 하늘에 빛나는 돔의 우아한 곡선미와 정원을 전경으로 완벽한 대칭미가 경탄을 자아낸다. 게다가 건물이 지어진 내력이 담긴 흥미로운 스토리까지 있으니 그토록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야무나’ 강변에 세워진 타지마할은 인간이 거기에서 살기 위한 건물이 아니요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한 건물도 아니다. 단지 죽은 자를 위해 지어진 대건축물인데 주인공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까지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다.
샤 자한은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그의 세 번째 부인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무덤이라는 타지마할을 건설했다. 무덤 건설에 걸린 기간은 22년이나 됐으며 요즘 돈으로 계산하면 1조 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이후 아들에 의해 폐위되어 이곳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아그라 성(城)에 유폐(幽閉)되었으니. 말년에 성(城) 한쪽 발코니에 서서 사랑했던 왕비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심경이 얼마나 허허롭고 처연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지마할을 돌아 나와 아그라 성으로 향한다. 아그라 성은 무굴의 3대 황제인 악바르에 의해 건설됐는데 애초에는 군사 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광으로까지 불렸던 샤 자한이 황제가 된 이후 자신의 재능을 살려 아그라 성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궁전으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인도는 우리의 60년대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볼거리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여기에서 끊을 수밖에 없다.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이었지만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어찌 다 지면에 옮길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갠지스강을 보고 오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앞으로 언제 또 인도 땅을 밟을 기회가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애초 망설이지 않고 따라나서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릴 때는 이미 늦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옳거니.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뭐가 잘못됐던 것인지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내내 복통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리가 떨리기 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은 아무래도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인도의 어느 후진 호텔에서 침대 밑에 갑자기 나타난 도마뱀을 보고 기겁했던 일 또한 세월이 흐르면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 고맙구나, 아들아.
〈주필〉
호텔에 짐을 막 풀고 나오니 ‘릭샤’(좌석이 딸린 3륜차량)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 운전기사와 곧바로 흥정을 시작한다. 시내 한 바퀴 돌고 오는 데 얼마나 받을 거요? 왕복 200루피, 오케이. 오, 싸다. 200루피면 우리 돈으로 불과 3000원 정도.
우리는 낯선 이국에서 그를 마치 자가용 기사나 되는 것처럼 부리며 여유 있는 저녁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아마도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영업용 택시 기사를 불러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이나 이용했다면 몇만 원도 더 지불해야 했을 테니까.
애초 ‘흥정을 확실히 해 놓은 뒤 타라’는 여행 정보를 알고 가기는 했다. 한데 영어를 모르는 것인지 모른 체하는 것인지 현지 말로 쏼라쏼라 하는 통에, 어떻게 되려니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한번 승차를 하고 나니 그는 돌변해서 호텔 이름을 대도 모르쇠로 나왔다.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호텔까지 돌아오긴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우리나라 또한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교통문화 후진국에 갔으니 바가지를 쓸 각오는 당연히 했어야지.(바가지라고 해 봐야 우리 돈으로 3천 원도 못 되는 돈이지만)
여기는 인도 땅. 그래도 많은 여행자들이 한 번쯤 가 보고 싶어 하는 명상의 나라. “인도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나라. 그래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현인이 부른 ‘인도의 향불’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염불소리/ 간지스강 푸른 물에 찰랑거린다/ 무릎 꿇고 하늘에다 두 손 비는 인디아 처녀/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아∼ 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인도의 교통수단은 다양했다. 앞서 우리 둘이서 함께 탄 것이 바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오토 릭샤’였다. 자전거 뒤에 좌석을 만들어 페달을 돌리는 릭샤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말이 끄는 마차도 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대부분 에어컨도 없는 낡은 버스가 굴러다니는데, 심지어 6·25 당시 피란 열차처럼 승객들이 버스 지붕 위에까지 올라타고 가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40도 가까운 폭염 속에서 하루에 네댓 시간씩 걷고, 또 네댓 시간씩 버스를 타야 하는 고난의 여행길. 그래도 뭐 사서 하는 고생이니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타지마할’ 한 군데 본 것만으로도 본전은 빼고 남을 것이니.
듣던 대로 인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로 뽑힌 타지마할은 장관이었다. 파란 하늘에 빛나는 돔의 우아한 곡선미와 정원을 전경으로 완벽한 대칭미가 경탄을 자아낸다. 게다가 건물이 지어진 내력이 담긴 흥미로운 스토리까지 있으니 그토록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야무나’ 강변에 세워진 타지마할은 인간이 거기에서 살기 위한 건물이 아니요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한 건물도 아니다. 단지 죽은 자를 위해 지어진 대건축물인데 주인공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까지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다.
샤 자한은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그의 세 번째 부인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무덤이라는 타지마할을 건설했다. 무덤 건설에 걸린 기간은 22년이나 됐으며 요즘 돈으로 계산하면 1조 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이후 아들에 의해 폐위되어 이곳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아그라 성(城)에 유폐(幽閉)되었으니. 말년에 성(城) 한쪽 발코니에 서서 사랑했던 왕비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심경이 얼마나 허허롭고 처연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지마할을 돌아 나와 아그라 성으로 향한다. 아그라 성은 무굴의 3대 황제인 악바르에 의해 건설됐는데 애초에는 군사 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광으로까지 불렸던 샤 자한이 황제가 된 이후 자신의 재능을 살려 아그라 성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궁전으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인도는 우리의 60년대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볼거리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여기에서 끊을 수밖에 없다.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이었지만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어찌 다 지면에 옮길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갠지스강을 보고 오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앞으로 언제 또 인도 땅을 밟을 기회가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애초 망설이지 않고 따라나서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릴 때는 이미 늦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옳거니.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뭐가 잘못됐던 것인지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내내 복통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리가 떨리기 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은 아무래도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인도의 어느 후진 호텔에서 침대 밑에 갑자기 나타난 도마뱀을 보고 기겁했던 일 또한 세월이 흐르면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 고맙구나, 아들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