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표절(剽竊)은 도둑질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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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표절(剽竊)은 도둑질이라는데
2014년 02월 21일(금) 00:00
시조는 고려 말기부터 발달해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그렇다면 시조(時調)에는 왜 시 ‘시’(詩) 자가 아닌 때 ‘시’(時) 자가 들어가는 걸까. 이에 대한 의문은 시조(時調)란 말의 연원을 생각하면 금방 풀린다.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임말이 시조인 것이다.

시절가조란 그 시절(時節)에 유행하는 노래 곡조(曲調)다. 쉽게 말해 유행가인 셈이다. 결국 시조는 음악의 한 형식을 갖춘 노래의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시조 즉 노래를 옛날에는 ‘영언’(永言)이라 했다. 말(言)을 길게(永) 빼면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들은 바 있는 ‘청구영언’(靑丘永言)이 바로 그것이다. ‘청구’(靑丘)는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오행설(五行說)에서 청색과 동쪽 방위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동방에 위치한 조선은 ‘푸른 산등성이’ 즉 청구(靑丘)가 된다.

‘청구영언’은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조집의 하나다. 우리는 그 청구영언에 대해 김천택(金天澤)이 편찬한 가집(歌集)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러나 편찬자가 과연 김천택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국문학계에서도 의문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차 지난 2008년 청구영언의 원본을 편찬한 사람이 홍만종(洪萬宗, 1643-1725)임을 확정하다시피 하는 자료가 발굴됐다. 영산대 김영호 교수는 당시 발표한 논문에서 홍만종이 청구영언 편찬 완료에 즈음해 서문으로 작성한 그의 친필 원고를 공개했다.

김 교수는 청구영언 서문이 홍만종 친필일 수밖에 없는 근거로 무엇보다 제목에 들어간 ‘영언’(永言)에 대한 개념 규정이 김천택이 편집했다고 알려진 기존 청구영언본에는 아예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또한 현전하는 소위 김천택 편집본 청구영언 작품 곳곳에 수록된 작품평이 홍만종의 다른 저서에 나오는 구절과 똑같다는 사실도 제시했다. 따라서 현행본 청구영언은 김천택이 홍만종 원고를 표절한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다.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표절물이랄 수 있는 청구영언에 대해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요즘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 역시 표절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별그대’는 1609년 (광해 1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비행물체 출몰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이 더해진 드라마다. 400년 전 지구에 온 외계남 도민준(김수현 분)과 톱스타 천송이(전지현 분)의 달콤 발랄 로맨스가 재미있게 전개된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주인공 김수현의 니트가 최근 한 경매에서 1000원부터 시작해 600만 원대에 낙찰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뿐인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수요일과 목요일을 ‘별요일’이라 부를 정도로 열광한다.

표절 논란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는데 웹툰 작가 강경옥이 자신의 만화 ‘설희’를 ‘별그대’가 표절했다며 의혹을 제기했고, ‘별그대’의 박지은 작가는 “단 한 번도 ‘설희’를 본 적이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광해군 시대에 목격된 미확인 비행물체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왕조실록 광해군 일기에는 1609년 9월 25일 강원감사 이형욱이 다음과 같이 전언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양양부(襄陽府)에서는 8월 25일 미시(未時)에 품관(品官)인 김문위(金文緯)의 집 뜰 가운데 처마 아래의 땅 위에서 갑자기 세숫대야처럼 생긴 둥글고 빛나는 것이 나타나(忽有圓光炯如盤) 처음에는 땅에 내릴 듯하더니 곧 1장 정도 굽어 올라갔는데 마치 어떤 기운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습니다.” 400년 전 조선 땅에 UFO가 출몰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를 실록에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광해군일기는 당시 양양뿐만 아니라 강원도 인근 곳곳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목격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문제가 된 만화와 드라마의 줄거리는 유사할까? 표절을 주장하는 쪽과 반박하는 쪽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지만 소재와 인물이 비슷해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표절(剽竊)은 ‘표’(剽)나 ‘절’(竊)에 모두 ‘훔치다’는 뜻이 있는 만큼 글자 그대로 도둑질이다. 당연히 작가의 양심이 걸린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종종 여러 분야에서 표절 논란이 일어나곤 한다. 다행히 ‘별그대’는 그 혐의를 벗어나는 것 같다. 온도계의 발명자가 여섯 명이나 되며 백신의 효능을 각자 발견한 과학자도 네 명이나 되는 것처럼 소재가 비슷하다 해서 다 표절은 아니다. 어찌 됐든 수많은 여심(女心)을 뒤흔들었던 ‘별그대’는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주 종영(終映)되는데 이번에는 7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OST ‘한 번 더’가 표절 시비에 휩싸이고 있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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