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문화도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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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문화도시라고?
2013년 08월 07일(수) 00:00
지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오세훈은 누구도 생각 못한 ‘깜짝 공약’을 내놓았다. 만약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 든든한 ‘문화부시장’을 곁에 두고 서울을 파리, 뉴욕이 부럽지 않은 고품격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제안’ 덕분(?)인지 오세훈은 압도적인 표차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의 ‘회심의 카드’는 당시 정치적인 이해 등이 얽혀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됐다.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세훈은 문화부시장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듯 하다. 지난 2007년 5월 서울을 ‘뜯어고치겠다’며 디자인 서울총괄본부를 발족, 공공디자인 분야의 권위자인 권영걸 서울대 미대학장을 수장으로 앉혔다. 말이 본부장이지 부시장급에 해당하는 요직이었다.

오 시장이 디자인 본부를 창안한 건 공공디자인을 문화도시의 ‘ABC’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많더라도 도시의 분위기가 ‘문화적’이지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오 시장의 의욕과 달리,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를 테면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한가하게 디자인이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시장의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는 서울시의 도시경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고, 이듬해 세계디자인 수도로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지난 4월 부산시는 관 주도의 문화행정을 민간으로 옮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표했다. 문화융성을 키워드로 내건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다분히 의식한 행보로, 행정의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새 청사진에 따르면 문화정책 특별보좌관(문화특보) 도입, 개방직 부산문예회관장 임명, 문화창조본부 신설, 시민문화커뮤니티 육성, 문화예술콘텐츠 육성위원회 발족 등이 망라돼 있다.

부산시가 문화특보를 추켜 든 이유는 중앙정부와의 가교역할은 물론 지역 문화정책의 컨트롤타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영화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명실상부한 문화의 도시로 몸집을 키우려면 그에 걸맞는 정책과 행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이달 말께 전국 최초로 문화특보를 영입할 예정이다.

부산이 문화특보를 전면에 내세우던 시기, 광주에선 시민 특별보좌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주시는 지난 3월 말 시와 시민단체의 가교역할을 맡게 될 ‘채널’로 NGO 출신 인사를 시민특보로 임명했다. 하지만, 시 안팎에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강운태 시장이 껄끄러운 시민단체들을 끌어안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속내야 어쨌든, 강 시장에겐 산적해 있는 문화관련 현안들보다 시민특보라는 ‘자리’를 새로 만드는 게 더 시급했던 모양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최근의 광주 문화계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다. 개관을 2년 앞둔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은 콘텐츠와 법인화, 전시·공연예술감독의 부적격 논란으로 조용한 날이 없고, 광주시향은 근무평정의 적법성을 놓고 시와 시향단원들이 소송 중에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월부터 공석 중인 시향 상임지휘자 선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게다가 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빛고을 문학관 역시 ‘부지 문제’로 올 스톱됐고, 출범 2년째를 맞은 광주문화재단은 채용과 인력관리 등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를 ‘살펴 볼’ 여유도 없을 뿐더러 최근 요코하마, 상하이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호재’를 살릴 마스터플랜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광주의 핵심적인 문화정책들이 겉돌고 있는 데에는 이들을 관리·감독하고 통합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가장 크다. 최근 전당의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쟁은 대표적인 예다. 법인화를 밀어붙이려는 문화관광부에 맞서 지역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구심체가 없는 것이다.

물론 광주에도 지난 2005년 아시아문화 중심도시사업과 시 문화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신설한 문화정책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잦은 인사 교체와 낮은 전문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문화정책실장들의 경우 평균 재임기간이 6개월에 그쳐 업무를 파악할 만하면 자리를 옮겼다.

지금 광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문화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사업과 동아시아문화도시 프로젝트는 성공 여부에 따라 광주의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이들 메가 이벤트가 탄력을 받을려면 지역 문화정책들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과 전문적 역량을 갖춘 문화 컨트롤타워가 시급한 이유다. 바라건대, 그 사령탑이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의 ‘격’에 맞는 문화부시장이었으면 더 좋겠다.

/박진현 편집국 부국장·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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