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임력 보존의 골든타임을 위하여 - 이준형 시엘병원 원장
  전체메뉴
가임력 보존의 골든타임을 위하여 - 이준형 시엘병원 원장
2026년 02월 25일(수) 20:00
대한민국은 지금 유례없는 저출산과 고령 임신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난임시술’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난임 시술 건수는 약 20만 건으로 2019년 대비 36.7% 증가했다. 커리어를 쌓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임신을 미루는 것은 현대 여성의 당당한 선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생물학적 시계는 그 선택을 끝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이 “의학이 발전했으니 언제든 임신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는 훨씬 더 신중한 판단을 요구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NEJM(2025년) 자료에 따르면 본인의 난자를 이용한 시험관아기 시술(IVF)의 생존아 출생률은 35세 미만 43.1%로 시작하지만 연령이 증가할수록 급격히 낮아진다. 38~40세 19.0%, 41~42세 9.4%, 그리고 43세 이상(42세 초과)은 3.2% 수준에 머문다. 국내 통계에서도 44세 임신율 9.9%, 45세 이상 4.5%로 보고되어 고령 임신의 현실을 뒷받침한다.

반대로 20대의 젊은 기증자로부터 난자를 공여받을 경우 산모의 연령과 관계없이 성공률은 약 50~60%로 비교적 높게 유지된다. 이는 임신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자궁의 나이보다 ‘난자의 생물학적 나이’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궁은 40대에도 임신을 유지할 역량을 가질 수 있지만 난자 자체의 노화가 임신 성공의 가장 큰 변수가 되는 것이다.

가임력을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검사가 AMH(항뮬러관호르몬)이다. 흔히 ‘난소 나이 검사’로 알려져 있으며 검사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AMH 검사는 소량의 채혈만으로 가능하고 생리 주기와 무관하게 언제든 검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금식이 필요 없어 바쁜 직장인도 부담이 적다. 대개 5~10분 내외의 채혈로 검사가 끝나며 결과는 보통 며칠 내 확인할 수 있다. 이 수치를 통해 난소 예비력과 향후 가임 가능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정부는 여성들이 가임력을 점검할 수 있도록 ‘가임력 검사 지원 사업’을 통해 AMH 검사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가임력 보존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가 함께 보호해야 할 가치로 자리 잡아가는 흐름이다.

검사 결과 가임력 보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난자 동결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동결 당시의 나이’가 효율성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미국 보조생식기술학회(SART)의 대규모 연구(Fertility & Sterility, 2021)에 따르면 건강한 아이 1명이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난자 수는 연령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단순히 몇 번 더 시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시기의 난자일수록 임신 성공률이 높고 유산 위험이 낮으며, 결과 또한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미디어를 통해 40대 후반 출산 사례를 접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실패를 반복한 과정이 있거나 난자 공여 등 의학적 도움이 동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43세 이후 본인 난자 체외수정의 생존아 출생률이 3%대라는 현실은 의학적으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도 의료의 역할이지만 동시에 ‘가능한 한 늦기 전에 대비하자’라고 정직하게 안내하는 것 역시 환자를 위한 진료라고 믿는다. 너무 늦은 시기의 반복 시술은 심리적·신체적 부담이 매우 크다. 임신 계획이 당장 없더라도 가임력 검사를 통해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난임 전문의로서 권장하는 가임력 보존의 최적기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다. 너무 늦게 시작하면 성공 확률이 떨어져 마음고생이 커질 수 있고 너무 이르게 준비하면 실제로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난자 동결은 임신을 늦추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지키면서도 미래의 선택권을 남겨두는 방법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활용해 간편한 AMH 검사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