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도는 안녕하신가요-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 |
“기도를 올리면 모르는 문제들도 다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게 아니군요….”
이번에 수능을 치른 한 수험생이 내게 한 말이다. 얼마나 시험이 간절했으면 저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하긴,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면 종종 나만의 의식을 치르곤 했다. 일곱걸음 걸을 동안 등교길 보도블럭의 선을 한번도 밟지 않는 것이다. 성공하면 이번 시험은 잘 볼 것이라고 확신하곤 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해서 낙담한 기억 뿐이다.
이 수험생은 간절하게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 있었다. 그러나 시험 결과가 기대한 만큼 좋지 않았다. 원하는 대학에 집착하고 있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가슴은 쉬 집착을 내려 놓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있었다. 몇 년의 피땀 어린 노력이 단 하루 만에 허사가 되어 버렸으니 상심할 만도 하다. 수능은 끝났고, 소원에 집착하는 마음만 남았다. 실패한 소원성취는 깊은 상심이 되어 그를 힘들게 했다. 나는 그에게 힘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오랜만에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차담을 했다. 한 분이 내게 물었다.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뜬금없이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나는 되물었다.
“다니는 절은 있나요”
“없어요”
“기도는 왜 하려고 하나요”
“집에 안 좋은 일이 좀 있어서요….”
조용히 말끝을 흐리는 그 분의 얼굴에서 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를 생각한 듯하다. 사실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에 특별한 형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직 간절하게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정말 간절하면,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도 모르게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기도하게 된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경험해본 일이긴 하지만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기도이기에, 제대로 격식을 갖춰서 정성껏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도하는 법을 내게 물어 본 것이리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일러 ‘소원’이라고 한다. 상식적인 기도는 소원을 비는 것이다. 때로는 핸드폰을 사달라는 어린 아이의 기도가 독립을 갈구하는 애국지사의 기도보다 더 간절할 수도 있다. 간절하다는 것은 단순히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쏟아 지극하게 정성을 다하는 상태이다. 간절함은 곧 집착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하여 소원성취만이 작금의 현실을 바꿀 유일한 대안이라 굳게 믿을 때, 기도의 필요성은 전면으로 부상한다. 기도는 현실과 소원 사이의 간극을 채워준다.
간절하다는 것은 그만큼 소원이 쉬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뜻하기도 한다. 시험 당일날 아침의 등교길, 이제 더이상 공부할 시간도 없다. 이대로라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바란다. 만약 내가 충분히 공부했거나 아니면 아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면, 시험 당일날 아침에 그렇게까지 간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심이 큰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은 또다른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다. 기도하는 법이 궁금한 분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직시와 통찰이다. 수험생은 “진인사대천명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니 솔직히 마음이 힘들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템플스테이 참가자 분도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난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기도하는 것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직시와 통찰의 대부분은 기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고 끈질기게 바라보는 것이다. 수험생은 특정 대학에 집착하는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분은 어쩌면 집착에 가까울지도 모를 가족에 대한 애정을 스스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꾸는 것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사이에서 지혜로운 균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집착과 욕망에서 비롯되는 기도는 마음의 병을 키운다. 그러나 수행으로서의 기도는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처한 현실을 변화시킨다. 수행으로서의 기도는 기도에 이르는 병을 직시하고 마음을 힐링으로 이끈다. 아름다운 인생은 욕망과 자기성찰로 직조된다. 욕망으로만 점철되는 인생은 결국 고통 속에서 헤맬 뿐이다.
이번에 수능을 치른 한 수험생이 내게 한 말이다. 얼마나 시험이 간절했으면 저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하긴,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면 종종 나만의 의식을 치르곤 했다. 일곱걸음 걸을 동안 등교길 보도블럭의 선을 한번도 밟지 않는 것이다. 성공하면 이번 시험은 잘 볼 것이라고 확신하곤 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해서 낙담한 기억 뿐이다.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뜬금없이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나는 되물었다.
“다니는 절은 있나요”
“없어요”
“기도는 왜 하려고 하나요”
“집에 안 좋은 일이 좀 있어서요….”
조용히 말끝을 흐리는 그 분의 얼굴에서 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를 생각한 듯하다. 사실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에 특별한 형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직 간절하게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정말 간절하면,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도 모르게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기도하게 된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경험해본 일이긴 하지만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기도이기에, 제대로 격식을 갖춰서 정성껏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도하는 법을 내게 물어 본 것이리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일러 ‘소원’이라고 한다. 상식적인 기도는 소원을 비는 것이다. 때로는 핸드폰을 사달라는 어린 아이의 기도가 독립을 갈구하는 애국지사의 기도보다 더 간절할 수도 있다. 간절하다는 것은 단순히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쏟아 지극하게 정성을 다하는 상태이다. 간절함은 곧 집착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하여 소원성취만이 작금의 현실을 바꿀 유일한 대안이라 굳게 믿을 때, 기도의 필요성은 전면으로 부상한다. 기도는 현실과 소원 사이의 간극을 채워준다.
간절하다는 것은 그만큼 소원이 쉬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뜻하기도 한다. 시험 당일날 아침의 등교길, 이제 더이상 공부할 시간도 없다. 이대로라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바란다. 만약 내가 충분히 공부했거나 아니면 아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면, 시험 당일날 아침에 그렇게까지 간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심이 큰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은 또다른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다. 기도하는 법이 궁금한 분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직시와 통찰이다. 수험생은 “진인사대천명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니 솔직히 마음이 힘들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템플스테이 참가자 분도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난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기도하는 것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직시와 통찰의 대부분은 기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고 끈질기게 바라보는 것이다. 수험생은 특정 대학에 집착하는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분은 어쩌면 집착에 가까울지도 모를 가족에 대한 애정을 스스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꾸는 것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사이에서 지혜로운 균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집착과 욕망에서 비롯되는 기도는 마음의 병을 키운다. 그러나 수행으로서의 기도는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처한 현실을 변화시킨다. 수행으로서의 기도는 기도에 이르는 병을 직시하고 마음을 힐링으로 이끈다. 아름다운 인생은 욕망과 자기성찰로 직조된다. 욕망으로만 점철되는 인생은 결국 고통 속에서 헤맬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