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효성그룹이 글로벌 소재 기업 자회사 인수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실리콘 음극재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 ‘원천기술과 지적 자산에 기반한 가치 극대화’를 강조해 온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의 ‘가치 경영’이 이룬 성과라는 평가다.

HS효성은 “지난 31일 1억 2000만 유로(2000억원)를 투자해 벨기에에 본사를 둔 글로벌 소재 기업 유미코아의 배터리 음극재 자회사 EMM을 인수하고 유미코아와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거래는 당국의 승인을 거쳐 최종 마무리될 예정이다.

유미코아는 100년 넘는 역사와 첨단 소재 원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배터리, 촉매, 반도체, 방산, 우주항공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생산 능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다. 최근 대두되는 희토류 관련 기술도 보유하고 있으며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가 라돈, 우라늄 등 연구 활동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실리콘 음극재는 배터리의 음극에 적용되는 소재로 기존의 흑연 음극재보다 에너지 밀도가 최대 10배 이상 높아 차세대 배터리 시장의 판도를 바꿀 소재로 꼽힌다.

또 전기차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급속 충전이 가능하고 충전 효율 개선, 주행 거리 향상, 가격 경쟁력 확보 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기술이어서 세계 완성차·배터리 제조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다. 특히 음극재 이외의 다른 소재 영역이 기술적 한계에 이르면서 실리콘 음극재가 미래 배터리 혁신에 가장 잠재력이 큰 분야로 꼽히고 있다.

세계 배터리 시장도 여전히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신차 판매의 20% 이상이 전기차였고 올해 25%, 2030년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혁명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로보틱스, 드론 등 새로운 수요처까지 추가돼 배터리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음극재 시장은 이들 산업에 필수적인 배터리팩 용량 증대, 고에너지 밀도, 급속 충전 수요 등에 적합한 실리콘 음극재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글로벌 조사기관인 큐와이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 음극재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억달러에서 연평균 40% 가까이 성장해 2031년에는 4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다른 조사기관인 SNE 역시 2035년 실리콘 음극재의 시장 규모가 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HS효성이 이번 투자로 확보한 원천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화장품 소재 등 정밀 화학 분야 등까지 사업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HS효성의 실리콘 음극재 시장 진출은 반도체, 조선, 방산 등과 함께 성장 산업 분야에서 대한민국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미코아 자회사 인수는 조현상 부회장의 가치 경영 철학의 일부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 부회장은 평소 기술과 지적 자산 확보를 통해 고부가 포트폴리오를 지향하고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가치 경영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차세대 AI로 불리는 엔터프라이즈 AI, 피지컬 AI 관련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위해 지적 자산을 보유한 세계 업체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조 부회장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유미코아를 수차례 방문했으며 계약 기간인 10월 말을 맞추기 위해 ABAC(APEC 공식 기업 자문 기구) 의장을 맡고 있던 APEC 준비 시기에도 여러 차례 양사의 철야 미팅을 진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HS효성은 이번 인수를 통해 향후 5년간 1조 50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첫 투자처는 60년 전 효성그룹의 모태가 된 울산공장으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