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에 1인 5역…격무에도 노동자 대우 못 받아
꼰대들의 대학원, 노예가 된 학생들 <2>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근로자 포함 법 개정안 발의 5년
연구 보조·강의 조교·행정업무까지
근로계약 안돼 장학금 명목 임금
‘근로자 포함’ 법 개정안도 불발
노동자인듯 아닌듯 지위 애매모호
30%가 “생활비 충당도 어려워”
근로자 포함 법 개정안 발의 5년
연구 보조·강의 조교·행정업무까지
근로계약 안돼 장학금 명목 임금
‘근로자 포함’ 법 개정안도 불발
노동자인듯 아닌듯 지위 애매모호
30%가 “생활비 충당도 어려워”
![]() /클립아트코리아 |
‘말 안 들으면 싸대기를 때리는 교수’, ‘기분 나쁘면 탁자 뒤집어엎고 육두문자 욕을 하는 교수’, ‘돈을 안 줘 매일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연구실.’
국내 대학원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김박사넷’에 익명으로 올라온, 지도교수와 연구실 등에 대한 ‘한 줄 평’이다.
김박사넷은 지난 2017년부터 대학원생들이 대학원이나 지도교수에 대해 솔직한 평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커뮤니티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는 노동자라면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내용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김박사넷의 ‘한 줄 평’ 게시판 운영이 중단된 이후로도 자유게시판에는 ‘아무도 자길 못 건드린다는 생각 때문에 인건비로 구라(거짓말)를 치고 졸업으로 협박한다’는 등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정작 대학원생들은 이같은 피해 사실을 고발할 곳이 하나도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교수 지시에 따라 현행법상 ‘노동’으로 분류되는 일을 하면서도, 고등교육법상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 분류돼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갑질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듯 학생 아닌, 노동자인듯 노동자 아닌 애매모호한 사회적 지위를 꼽는다.
광주 지역의 전·현직 대학원생들은 학내에서 프로젝트 연구원, 강의 조교, 학회 간사, 대학 강사, 행정 직원 등 1인 5역을 수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논문을 준비하고 교수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수 연구를 보조하고 출장·회계 처리에 행정 업무까지 하려면 밤샘은 물론 주말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남대 공과대 연구원 A씨는 “근무시간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암묵적으로 정해졌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밤새 일하는 날도 많고, 연구과제 보고서를 마무리할 때는 주말에도 나오라는 요구를 당연하게 한다”고 말했다.
조선대 대학원을 졸업한 B씨도 “행정업무는 당연히 하는 일이다. 연구 물품 구입비부터 교수의 식사비용은 물론, 교수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다른 직원 영수증까지 도맡아서 처리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전남대 대학원생 C씨는 “교수가 틈틈이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면서 쌍욕을 듣는 일도 부지기수였다”며 “지도교수가 사장 마냥 대학원생 임금 지급까지 총괄하고 있으니 눈치를 보고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대학원생들은 정부출연연구소 소속이 아니고서야 대다수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노동권이나 근로관계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근로 계약이 안 돼 있으니 ‘장학금’을 명목으로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근로 시간이나 업무 범위, 임금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근로 기준도 지도교수의 손에 맡겨지고 있다. 연구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실질적인 업무 참여도와 인건비를 임의로 결정하는 식이다.
전남대, 조선대 등 광주·전남의 대학원생 10여명을 통해 들은 한 달 임금은 130만원에서 190만원까지 제각각이었다. 올해 기준 한 달 최저임금인 209만 6270원(시간당 1만 30원)에 한참 모자랄 뿐더러 600만원이 넘는 한 학기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지난 6월 9일~30일 전국 대학원생 24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 중 68.7%가 연구비 재정 지원이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29.6%는 생활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30.8%는 등록금이나 생활비 충당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 상환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원생의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현실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7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정의(2조1항 1)한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 조항에 ‘대학원생을 포함한다’는 문장을 추가하자는 취지의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적 있으나 불발됐다. 대학원생의 ‘갑질’ 피해가 끊이질 않는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개정안이었다.
지난 2023년에는 산학협력단 과제에 참여한 대학원생 연구원이 노동권 있는 노동자라는 노동위원회의 첫 인정 판례가 나왔으나,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로 한정해 대학원생 전반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거로는 남지 못했다.
김강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부지부장은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학원생의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대학원생은 단순히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학술 생태계에 기여하는 노동자로서 ‘학생 노동자’로 인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국내 대학원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김박사넷’에 익명으로 올라온, 지도교수와 연구실 등에 대한 ‘한 줄 평’이다.
김박사넷은 지난 2017년부터 대학원생들이 대학원이나 지도교수에 대해 솔직한 평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커뮤니티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는 노동자라면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내용들이 적지 않다.
정작 대학원생들은 이같은 피해 사실을 고발할 곳이 하나도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갑질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듯 학생 아닌, 노동자인듯 노동자 아닌 애매모호한 사회적 지위를 꼽는다.
광주 지역의 전·현직 대학원생들은 학내에서 프로젝트 연구원, 강의 조교, 학회 간사, 대학 강사, 행정 직원 등 1인 5역을 수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논문을 준비하고 교수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수 연구를 보조하고 출장·회계 처리에 행정 업무까지 하려면 밤샘은 물론 주말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남대 공과대 연구원 A씨는 “근무시간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암묵적으로 정해졌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밤새 일하는 날도 많고, 연구과제 보고서를 마무리할 때는 주말에도 나오라는 요구를 당연하게 한다”고 말했다.
조선대 대학원을 졸업한 B씨도 “행정업무는 당연히 하는 일이다. 연구 물품 구입비부터 교수의 식사비용은 물론, 교수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다른 직원 영수증까지 도맡아서 처리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전남대 대학원생 C씨는 “교수가 틈틈이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면서 쌍욕을 듣는 일도 부지기수였다”며 “지도교수가 사장 마냥 대학원생 임금 지급까지 총괄하고 있으니 눈치를 보고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대학원생들은 정부출연연구소 소속이 아니고서야 대다수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노동권이나 근로관계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근로 계약이 안 돼 있으니 ‘장학금’을 명목으로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근로 시간이나 업무 범위, 임금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근로 기준도 지도교수의 손에 맡겨지고 있다. 연구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실질적인 업무 참여도와 인건비를 임의로 결정하는 식이다.
전남대, 조선대 등 광주·전남의 대학원생 10여명을 통해 들은 한 달 임금은 130만원에서 190만원까지 제각각이었다. 올해 기준 한 달 최저임금인 209만 6270원(시간당 1만 30원)에 한참 모자랄 뿐더러 600만원이 넘는 한 학기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지난 6월 9일~30일 전국 대학원생 24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 중 68.7%가 연구비 재정 지원이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29.6%는 생활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30.8%는 등록금이나 생활비 충당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 상환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원생의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현실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20년 7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정의(2조1항 1)한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 조항에 ‘대학원생을 포함한다’는 문장을 추가하자는 취지의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적 있으나 불발됐다. 대학원생의 ‘갑질’ 피해가 끊이질 않는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개정안이었다.
지난 2023년에는 산학협력단 과제에 참여한 대학원생 연구원이 노동권 있는 노동자라는 노동위원회의 첫 인정 판례가 나왔으나,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로 한정해 대학원생 전반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거로는 남지 못했다.
김강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부지부장은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학원생의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대학원생은 단순히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학술 생태계에 기여하는 노동자로서 ‘학생 노동자’로 인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