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읽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을 위한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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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읽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을 위한 찬가
계속 읽기: 기억하지 못해도-한유주 지음
2025년 07월 18일(금) 00:20
한유주의 ‘계속 읽기’는 책과 읽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소설 ‘통과비자’를 읽은 후 책에 등장하는 로제 와인과 피자를 먹으며 소설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통과비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 ‘트랜짓’의 한장면.
‘읽기에 관한 책’의 미덕 중 하나가 “다른 책들로 이르는 여정을 만들어 주는 경험”이라고 할 때, 소설가 한유주의 에세이 ‘계속 읽기:기억하지 못해도’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더불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봤을법한 이야기가 줄줄이 등장해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도 떠올려보게 된다.

디지털 콘텐츠 홍수 속에서 종이책이 주는 매력이 독특한 ‘물성’이라고 했을 때 이 책은 그 최고치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권의 책이 등장하는 ‘계속 읽기’의 표지와 디자인을 자꾸 들여다보고 독특한 촉감을 계속 느끼기 위해 책을 가방에 넣는 대신 손에 오랫동안 쥐고 싶어진다.

‘계속 읽기:기억하지 못해도’는 제목처럼, 책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읽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을 위한 찬가다.

저자는 읽기라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두 가지 개념을 언급한다. 하나는 ‘라쿠나(lacuna)’. 영어의 사전적 의미는 “(글·생각·이론 등에서) 빈틈”이라는 뜻으로 그는 “텍스트 안에 비어 있거나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틈”이라 설명한다. 책을 읽을 때 “왜 이 인물이 여기서 이런 선택을 할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우리는 각자의 경험치 등을 녹여내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비워 있는 틈을 채우는 ‘능동적인 독자’가 된다. 또 하나는 데리다의 책에서 언급된 ‘아포리아(aporia)’다. “막다른 골목”이라는 뜻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나 모순을 의미한다고 한다.

저자는 “라쿠나와 아포리아는 읽는 행위를 계속해서 흔들고 지연시킨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읽기를 멈추고 크고 작은 심연들과 마주해 저마다 생각에 잠긴다. 읽기는 완결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완성형 해석보다는 오히려 언제나 변화할 가능성을 품은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학은 빈 공간을 상상하게 하고, 독자는 읽으며 나름대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읽는다.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등장하는 책은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녀가 스무 번쯤 읽었고 만듦새가 마음에 들었다 언급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나 역시 저자가 20년간 수십 번 읽은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 책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책장이 등장하는 인도 애서광의 에세이 ‘신음하는 선반’(프라딥 세바스찬) 등이다.

크리스토퍼 페촐트 감독의 영화 ‘트랜짓’과 원작 소설인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를 읽고 난 후 독서모임 회원들과 책 속에 등장하는 로제 와인과 피자를 먹으며 소설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나 대학시절 학교 근처의 서점에서 만났던 책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을 넘기다 보면 각자의 ‘읽기’를 떠올리게 된다. 책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순간들이라든지, 생존 가방을 꾸리는 취미가 있는 저자를 따라 무인도에 가져갈 책을 꼽아 보는 것이라든지, 결코 버리지 못하고 있는 책의 목록이라든지.

그밖에 여러 종류의 독서대, 천으로 된 책싸개, 독서등을 비롯한 독서 관련 장비와 언제나 흥미로운 애서가들의 이야기, 작은 도서관을 찾는 즐거움, 같이 읽기, 메모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황채영 사진작가를 알게 된 점이다. 누구라도 책 표지를 보는 순간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질 터다. <마티·1만 6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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