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스며든다] “출구 없는 독박 간병,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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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가 스며든다] “출구 없는 독박 간병,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립니다”
(3) 치매 돌보다 멍든 가슴 (상)
환자 돌봄 위해 다니던 직장 포기
식사·위생·안전 책임에 외출은 불가
동거 가족, 하루 평균 12.2시간 돌봄
보호자 연령, 50~59세 35.6% 최다
‘경제 부담’ 가장 큰 애로 38.3% 꼽아
지자체 상담·심리 회복 프로그램 운영
2025년 06월 03일(화) 08:00
치매진단을 받은 김용일씨의 어머니가 최근 광주시 서구 자택에서 안전봉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박연수 기자 training@kwangju.co.kr
“견디고 견디다 불현듯 ‘그냥 같이 죽자’라는 말이 튀어 나옵니다.”, “다른 형제들 생각해 가끔 나쁜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예고 없이 찾아온 부모의 치매를 돌보는 자식들의 하소연이다. 하루 아침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억장은 날마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

광주시 서구에서 치매를 앓는 부모를 돌보고 있는 김용일(63)씨는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에서 일을 하던 그는 5년 전, 90대 부모를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깜빡깜빡하던 두 부모 모두 결국 치매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는 갑자기 딸을 알아보지 못했고, 하루 종일 과거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밥을 해야 한다”, “나물을 말려야 한다”는 등의 말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중증 치매를 앓으며 가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자신이 결혼한 적조차 없다고 믿기 시작했다.

김 씨는 “(부모 두분 모두 치매를 앓고 자식을 못 알아보니)가슴이 무너져내렸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 장남인데 왜 나를 모르냐’고 따질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하루 일정은 두 부모의 부양으로 가득했다. 부모가 모두 요양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자식된 도리로 이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의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를 비교적 잘 이용했지만, 아버지는 외부 시설 이용을 완강히 거부했다. 김씨는 하루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며 부모의 식사와 위생, 안전을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외출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어머니가 집을 나서다 인근에서 발견된 일이 몇 차례 발생하면서, 현관에는 자물쇠를 여러 개 덧달아야 했다.

치매 부모 돌봄은 시간과 체력, 감정의 소진을 동반했다. 부모가 병증 탓에 갈등을 벌이는 날이면 김씨도 감정을 제어하기도 쉽지 않았다. 김씨는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와 함께 사는 가족은 주당 평균 4.4일, 하루 12.2시간을 돌봄에 할애해 주간 총 75.9시간을 환자 곁에서 보내고 있었다. 비동거 가족도 주당 평균 18시간을 돌봄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환자와 함께 보내며, 가족의 일상 자체가 돌봄에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치매 환자의 가족 가운데 45.8%가 돌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8.3%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식사, 위생, 안전 등 일상 전반을 직접 챙기고 있다고 답했다. 직접 돌봄만 담당하는 비율은 22.1%, 경제적 지원만 하는 경우는 19.6%였다.

이들 가운데 9.8%는 돌봄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적으로 가족이 치매 환자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구조다.

돌봄으로 인해 경제 활동을 중단한 경우도 적지 않다. 치매 환자 가족 중 과거에 일을 하다 그만둔 비율은 37.4%에 달했다. 하루 종일 부양해야 한다는 점에서 직장을 포기 할 수 밖에 없어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돌봄비용 지출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응답자가 38.3%로 가장 많았다. ‘치매 환자 치료와 돌봄에 대한 정책적 지원 부족’은 31.9%로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심리·정신적 건강 악화’(29.8%), ‘치매 증상과 돌봄 방법에 대한 정보 부족’(25.5%)도 주요 어려움으로 지적됐다.

의료발달로 치매환자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보호자들의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보호자의 관계는 자녀가 59.5%로 가장 많았고, 배우자 27.6%, 며느리·사위 8.6%, 기타 4.3% 순이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연령은 50~59세가 35.6%로 가장 많았고, 70세 이상(27.6%), 60~69세(24.5%)가 그 뒤를 이었다. 50세 미만은 12.3%에 불과했다.

광주시 서구 풍암동에서 혈관성 치매 치매 진단을 받은 남편을 돌보고 있는 채숙자(여·80)씨도 “혼자 화장실도 가기 어려운 남편을 부축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며 “치매 외에도 여러 질환이 있어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데, 갈 때마다 몸에 무리가 온다”고 토로했다.

채씨는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치매환자 돌봄은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면서 “그나마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으로 부담이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돌봄에 필요한 정보와 정기적인 돌봄 지원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치매환자 보호자인 오영운(왼쪽)씨와 채숙자씨가 최근 광주서구치매안심센터 ‘치매가족 자조모임’에 참석해 치매 가족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박연수 기자 training@kwangju.co.kr
채씨를 비롯해 광주일보 취재진이 만난 치매 환자 가족들은 “치매에 대한 정보 부족이 정신적 부담의 원인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돌봄을 갑작스럽게 맡게 되며 필요한 정보를 혼자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혼란을 겪었다고 말했다. 치매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치매는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증상을 악화시키고, 환자를 깔보거나 어린 아이 취급하며 관계마저 악화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보호자들의 목소리다.

“치매는 혼자 감당해서는 안 된다. 주변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치매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및 상담, 심리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의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초기 상담을 통해 환자의 상태와 가족의 부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족교실’, ‘자조모임’, ‘가족카페’, ‘힐링 프로그램’ 등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 광주시 서구 쌍촌동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환자 가족 10여 명이 참여한 요가 프로그램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스트레칭, 호흡, 명상 등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을 도모했다.

이날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오영운(74)씨는 굳은 몸을 풀며 다른 보호자들과 안부를 나눴다.

오씨의 아내는 5년 전, 60대 초반의 나이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65세 미만에서 발현되는 일명 ‘조기발병 치매’, ‘초로기 치매’는 노인성 치매에 비해 증상의 진행 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식당에서 일하며 가계를 함께 책임졌던 아내는 이후 자신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

특히 발병 초기, 신체 기능은 유지된 채 인지 기능만 저하되면서 돌봄에 어려움도 뒤따랐다. 오씨의 아내는 배회 증상을 보이다가 서구 쌍촌동 자택을 벗어나 무등산 인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의 도움으로 귀가했지만, 이후 오씨는 아내 곁을 한시도 비울 수 없게 됐다. 조기 치매 특성상 돌봄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증상이 중증으로 진행된 이후 오히려 돌보기가 편해졌다”는 오씨의 말에서 돌봄 과정에서의 피로감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씨는 치매안심센터의 자조모임에 참여하면서 부담이 한결 줄었다고 말했다. “환자 상황을 공유하면 다른 보호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든 아니든, 그 대화 과정 자체가 큰 힘이 된다.”

같은 센터를 이용하는 채씨 역시 “주변의 많은 가족들이 치매 환자의 상황을 치부라고 여기고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치매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가족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말고,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게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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