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김형중 조선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인문도시광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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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김형중 조선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인문도시광주위원회 위원장
2025년 06월 02일(월) 00:00
2025년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윤석열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이 진행됐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국회측 장순욱 변호사의 변론이었다. 변론 말미 이례적이게도 그는 노래 가사 한 구절을 인용한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 그 곡인데 인용한 부분은 이랬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어 장 변호사는 자신의 말을 덧붙인다.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국민이 법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법의 언어가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던 판국에 그가 구사한 언어는 각별했다. 혹자는 탄핵 정국에서 가장 ‘문학적’인 언어였다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분명 인용한 가사는 당시 대부분의 국민에게 일관되게 퍼져 있던 어떤 정서 상태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었다. “내란 이전의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풍경”. 그러나 비판철학자 아도르노의 사도이기도 한 나로서는 저 아름다운 가사에 동의하기 힘들었는데, 대체로 아름다운 것들은 거짓말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비상계엄 이전 우리가 살아오던 일상은 정말 평온했던가? 오염되지 않은 말들의 세계였던가? 알다시피 우리가 이제서야 ‘평온’했다고 가정하는, 혹은 그렇게 상상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항상 팍팍했고 폭력적이었고 요란했다. 즉 평온하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어떤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상실’한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약속이 지켜지며 일상은 평온한 어떤 이상적인 국가 상태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런 상태가 이전에 존재했고 우리는 한 때 그것을 누린 적이 있었으나 어떤 이유론가 지금은 상실해 버려서 되찾아야만 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실은 헌법의 작동 메커니즘도 거기서 멀지 않다. 11조 1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든가 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문장이 특히 그러한데, 알다시피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했던 적은 헌정 이래 한 번도 없었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적도 물론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민주주의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부족한’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저 문장들은 실현되어야 할 그 가치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발화함으로써 법을 정립하고 국가를 정초한다. 그러니까 수행적 발화를 사실 발화로 바꾸어 놓은 헌법도 거짓말하는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헌법은 지켜져야 한다. 너무도 연약한 허구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인데, 그럴수록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로 여겨져야 하고, 그 믿음은 모든 국민이 공유해야만 한다. 몇 사람의 광기가 그 믿음의 지반을 흔들기 시작하면 헌법은 금방 그 연약함을 드러내고 만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나, ‘국민 저항권’ 운운이 그 증거다. 장순욱 변호사 역시 바로 그 믿음 위에서 그렇게 말했을 줄 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에 대한 향수라는 점에서만 아니라 자꾸 플라톤의 살벌한 이상 국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바로 저 가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상태를 국가에 적용한 바 있다. ‘모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제 기능을 다하는 나라’. 그러니까 “철인은 지혜로 통치하고, 군인은 용기로 싸우며, 생산자는 절제로 노동하는” 나라, 그것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이다. 이것은 일종의 카스트 제도일 텐데, 그래서 저 아름다운 노래 가사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보수주의자의 그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항상 ‘부족한’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고 그래서 제자리로 돌아가기보다는 계속 한 발 더 이동해야 한다. 가령 작년 12월 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서 스스로를 “저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라고 소개하며 발언을 이어 나갔던 김유진 씨가 요청하는 것이 바로 그런 민주주의다. 그의 말을 옮긴다.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 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잠자리에 들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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