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시골청년과 마을처녀 ‘마음의 노래’로 사랑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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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시골청년과 마을처녀 ‘마음의 노래’로 사랑을 이루다
[리뷰] 광주시립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도니체티 걸작…하이라이트 재구성
한국어 가사·지역색 담은 유머 재미
절제된 선율·섬세한 감정 표현 집중
2025년 06월 01일(일) 20:23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 아디나와 네모리노가 노래하는 장면.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사랑은 때론 서툴고 엉뚱하지만, 그 진심만은 누구보다도 간절하다.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시골 청년과 당차고 영리한 마을 처녀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두 사람이 주고받는 사랑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마치 봄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마음을 간질이는 듯한 기분에 젖게 된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30~31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제18회 정기공연 ‘가족 콘서트 오페라-사랑의 묘약’은 도니체티의 걸작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재구성한 무대다. 130여 분에 달하는 원작을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압축한 80분 공연에는 친근한 한국어 해설과 지역색을 입힌 유머가 더해져, 클래식 오페라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의 눈높이에 한층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랑의 묘약’은 근대 서구에서 유행한 메디슨 쇼(medicine show)를 배경으로 한 희극 오페라다. 순박한 농부 네모리노는 영리한 마을 아가씨 아디나를 짝사랑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디나에게 청혼하는 장교 벨코레가 나타나며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절박해진 네모리노는 마을에 나타난 사기꾼 약장수 둘카마라에게 사랑을 얻게 해준다는 ‘사랑의 묘약’을 구매하고, 이로 인해 예기치 못한 소동이 벌어진다. 비록 묘약은 진짜가 아니지만, 오해와 웃음이 뒤섞인 한바탕 소동 끝에 두 사람은 비로소 진심을 확인하고 사랑을 이루게 된다.

시립오페라단은 이를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 입문형 무대’로 기획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극의 흐름을 짚어주는 해설자의 존재다. 해설을 맡은 이는 지역의 베테랑 배우 윤희철. 그는 약장수 둘카마라의 조수이자 이야기의 사회자 역할로 무대에 올라, 등장인물의 감정선과 극의 전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이목을 끌었다. 능청스러운 바람잡이 연기와 노련한 해설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 장면.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이탈리아어 원어로 펼쳐지는 공연의 중간중간 삽입된 한국어 대사는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는 ‘포인트’였다. 약장수 둘카마라는 “아따, 여기는 광주여”라며 능청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하고, 때로는 노래도 한국어로 바꿔 불러 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꼬부랑 할아버지도 벌떡 일어나게 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낫게 한 나의 위대한 명성을 다들 알고 있지?”라는 너스레 섞인 질문에, 어린 관객이 “몰라요!” 하고 외치자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원작 속 ‘싸구려 와인’으로 묘사된 사랑의 묘약은 지역색을 살려 ‘잎새주’로 바꿨는데 이같은 각색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도니체티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충분히 살리고자 애쓴 흔적이 보였다. 도니체티는 ‘아름다운 노래’를 뜻하는 벨칸토(Bel Canto) 오페라의 거장으로, 화려한 기교보다는 목소리의 유려한 선율과 감정의 섬세한 표현에 집중하는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극적인 줄거리보다도 노래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중심을 둔다는 점에서, 무대도 부드럽고 절제된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어우러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네모리노(테너)가 부른 대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애절한 진심을 담은 절창으로 객석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디나(소프라노)와 네모리노가 함께 부른 이중창 ‘산들바람에게 물어봐요’는 우아한 선율과 경쾌한 리듬이 어우러져, 두 인물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그려냈다.

호흡을 맞춘 카메라타전남 오케스트라 역시 도니체티의 음악을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호흡으로 표현했다. 전통 벨칸토 양식을 살린 부드러운 반주는 각 인물의 감정선을 더욱 섬세하게 감싸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 장면.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이날 공연의 아리아와 앙상블은 연령과 상관없이 관객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다. 숨을 죽이며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은 장면마다 박수와 미소로 화답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객석 곳곳에서 진심 어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클래식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가족 단위 관객들도 이야기와 음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오페라의 매력을 경험했다.

다만 하이라이트 형식으로 구성된 공연의 특성상, 원작 전체 줄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해설이 극의 맥락을 요약해 안내해주었지만, 일부 장면 전환은 충분한 서사적 개연 없이 이뤄져 흐름이 다소 끊긴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음악과 스토리 사이의 연결을 보다 자연스럽게 조율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연출적 보완이 뒤따른다면, 공연의 완성도는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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