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권 국립의대 설립, 해법을 생각한다 - 장필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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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권 국립의대 설립, 해법을 생각한다 - 장필수 논설실장
2024년 04월 24일(수) 00:00
전남에 국립대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문제는 30년도 더 된 지역의 숙원사업이다. 1990년 목포대가 의대 신설 건의문을 정부에 보낸 것이 시초이니 정확히 말하면 34년 된 숙원이다. 전남은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가장 많은데도 세종을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단위 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곳이다. 전남도는 상급병원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와 ‘원정 수술길’에 올라야 하는 현실을 들어 정부에 국립 의대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지만 지금까지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전남권 국립 의대 설립이 급물살은 탄 것은 정부의 의대 증원과 맞물리면서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 움직임을 보이자 김영록 전남지사는 바삐 움직였다. 목포대와 순천대가 의대 유치를 희망하는 상황에서 지역간 갈등을 사전에 없애기 위해 두 대학에 의대를 설립하는 ‘통합 의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1월에는 캐나다 노던 온타리오대학을 방문해 두 곳의 캠퍼스에서 의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지난 3월 14일 전남도청에 열린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이후 ‘단일 의대’로 방향 전환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김 지사의 국립 의대 설립 건의에 윤 대통령이 “어느 대학으로 갈 것인지 전남도가 정해주면 추진하겠다”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소지역주의 경계

곧바로 단일 의대를 전제로 한 정부의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료개혁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지역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신청하라”고 했고, 보건복지부는 “전남도 차원에서 의견을 정리해서 건의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의 입장을 종합하면 ‘전남도가 의견을 수렴해 건의하라’는 것이다. 김 지사가 단일 의대안 마련을 위해 공모 방식을 제안한 것은 이런 고육지책의 결과다. 그런데도 목포와 순천에서 순차적으로 전남도 공모 방식을 믿지 못하겠다며 단독 추진 목소리가 나온 것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다행히 며칠만에 목포에선 공모 수용으로 태도를 바꿨는데 이번에는 순천에서 전남도 공모에 참여하지 않고 정부에 단독으로 신청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순천대는 지난 17일 보도자료에 이어 18일 김 지사와 만남에서도 전남도의 공모가 법적 권한이 없고 동·서간 지역 갈등을 초래한다며 법적 권한이 있는 정부에 신청하겠다며 독자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노관규 순천시장도 전남도에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 순천대 입장을 지지했다. 당사자인 대학들이 자기 대학에 유치하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백보 양보해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기 지역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데 뭐라 할수는 없다. 다만 대승적 차원에서 조금씩 양보해 상생 방안을 찾길 바랄뿐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순천권의 독자 추진 움직임은 논리에도 맞지 않고 소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우선 전남도에 법적 권한이 없다는 주장은 정부가 사실상 전남도에 결정권을 위탁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다. 남은 쟁점은 전남도의 선정 방식인데 전남도는 공정한 외부 심사기관을 선정해 공모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순천대와 지역 정치권은 아마도 김 지사의 정치적 고향이 전남 서남권이라는 점을 들어 공모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나 싶다. 그들의 의심대로 만약 김 지사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릴만큼 김 지사가 어리석은 초보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전남도 공모에 맡겨보자

오히려 소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욕심이 문제다. 순천대의 독자 추진 결정 배경에는 순천시장과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 노관규 시장은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순천 단독 유치’를 주장해 왔다. 아무리 표를 의식한 행보라고 하지만 소지역주의는 전남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전남권 국립 의대 설립은 정부의 의대 증원과 맞물려 맞은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에 포함시키려면 물리적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에 지역내 갈등으로 의대 설립이 물 건너 간다면 34년 숙원을 물거품으로 만든 책임은 오롯이 지역 정치인들이 감당해야 한다.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할때 ‘중요하면서 급한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요한 일인데도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럴 경우 나중에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을때 대응하지 못하는 우를 경계한 것이다. 지역 정치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동안 전남권 국립 의대 문제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로 치부해 온 것은 아닌가라고. 이제 누구나 아는 ‘중요하면서도 급한 일’이 되자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척 숟가락을 얻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공정한 공모를 전제로 전남도에게 맡기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한 곳은 선정에서 탈락하겠지만 의대를 보충할 카드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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