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광장]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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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광장]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지식인의 두 얼굴, 소금 또는 찌꺼기
2024년 04월 08일(월) 00:00
요즘 나름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자주 보인다. 분명 다시 지식인들의 한 철 대목이구나 싶다. 지식이 너무 많은 탓인가? 이들은 같은 걱정과 같은 상황을 두고도 서로 다른 해법과 출구를 반복 제시한다. 이 현상은 전염성이 아주 강해서, 평소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마저 아무개 지식 많은 사람에게서 얻어들은 ‘지식’으로 목청을 높인다. 그리고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데’로 훈계를 시작한다. 모든 것이 간편화되는 시대에는 지식 또한 화려하고, 먹기 좋게 손질된 간편한 인스턴트 지식(정보)에 불과한 것인가? 전에는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것을 가장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것이 지식인이었다면, 현대 ‘지식인은 자신이 모르는 것은 지식으로 치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식인의 이 민망한 모습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통해서 우리가 앞에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돌아보자.

아는 사람, 지식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특수한 계층으로 존재해 왔다. 앎은 늘 귀하고 강한 힘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앎은 유용하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지식인 문제를 깊게 다룬 사르트르에 의하면 지식인의 위치는 애매하고 모호하며 이중적이다. 지식인은 권력층과 피지배계급의 사이에 끼어있다. 이 중간에서 지식인은 권력층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과 이론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는다. 결국, 지식인은 각 분야의 ‘지식 전문가들’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위치에 따른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진정한 지식인의 정의는 자신의 아는 진리를 세상과 나누는 사람들이다. 소위 보편적 지식인이다. 그래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서 남의 일에 기꺼이 관심을 갖고, 얻을 것이 없음에도 끼어드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한국의 최근 대학 진학률이 70퍼센트가 넘는다니, 웬만하면 다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지식은 지식이 많은 사람, 즉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지식인의 정의는 그의 행위와 연결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지식인에 대한 인식과 정의가 달라졌다고 해도 그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사람은 지식인이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람시의 말처럼 아는 것의 총량으로만 지식인을 정의 할 수 없다. 졸업장이 곧 지식인의 증거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현대 사회의 자신들의 알량한 지식을 들고 도떼기시장에 나온 지식인, 지식 전문가들에 대한 너무나 적나라한 또 다른 비판을 들어보자. 레지 드브레라는 프랑스의 철학자는 지식인을 이렇게 규정한다. “과거의 지식인은 시대를 명료하게 해석해주었지만, 지금의 지식인은 시대의 어둠에 어둠을 더할 뿐이다.” 이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둠을 크고 깊게 한다는 이 아픈 말은 사실 우리의 현재 상황이다. 어둠을 걷어 내는 지식과 지식인은 낡은 이념적 유물과 형식을 반복하면서 지식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대신 지식인의 의무인 미래가치를 위한 새로운 방향과 담론을 고민하며 탐색한다.

이제 우리가 직업적 지식 기술자와 전문가를 자신의 책무를 행하는 지식인과 구별해야 한다. 책무를 잊고, 도덕적 지적인 자아도취에 취한 지식 전문가들이 바로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사회의 찌꺼기다. 자신은 스스로 소금이라고 믿지만, 실제는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 과격한 탄식에서 바로 이들이 지식의 권력을 통해서, 전문가의 이름으로 ‘우리를 쓸모 없는 존재’로 만들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인은 태생적으로 결코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만 지식인은 힘을 얻으며, 쓸모없는 ‘찌꺼기’ 또는 지식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지식인의 이름값은 졸업장, 명성, 훈계와 훈수 두기 등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찌꺼기 지식인’ 임을 분명히 하며,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이 우리의 쓸모를 함부로 결정하지 못 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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