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해야만 하는 4월-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시 ‘황무지’는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토마스 스턴스 엘리엣(T.S. Eliot)의 시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의 하나’라고 손꼽히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암송하며 인용하는 ‘4월’에 해당하는 시구는 434행이나 되는 장시 중 7행에 불과하다. 총 5부로 구성된 시는 당시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야만 하는 현대인을 담은 1부 ‘죽은자의 매장’과 2부 ‘체스 게임’, 그리고 종말론적인 풍경이 묘사된 3부 ‘불의 설교’와 무한한 자유를 이야기하는 4부 ‘수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5부 ‘천둥이 한 말’에는 비를 끌고 오는 먹구름이 등장하면서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의미하는 ‘샨티 샨티 산티(Shantih Shantih Shantih)’로 끝을 맺는다.
그는 역사, 신화, 종교, 사상은 물론 단테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미심장한 상징들을 시속에 숨겨놓았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 시가 오늘날까지 자주 인용되는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어느 시대에도 통하는 보편타당성 때문일 것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시가 탄생한 시대는 암울하고 무기력한 사회였다. 그가 시를 쓰게 된 이유가 자신의 개인사였음을 추후 술회하기도 했지만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사회에 만연한 우울 그리고 급속도로 현대화됨에 따른 정신적 피폐를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했다.
실제로 시가 발표된 1922년의 미국과 유럽은 전후 다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가담한 미국이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은 번영을 거머쥔 반면에 유럽은 몰락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경기 호황을 누리는 듯했지만 전쟁에서 비롯된 충격과 공포의 경험 그리고 전쟁 사망자의 3배가 넘는 스페인 독감의 여파는 사회적 심리 상태를 히스테리로 몰고갔다. 이러한 불안의 징후는 미국에서 유럽에까지 끝없는 진보라는 당시 인류의 염원을 산산조각 냈다.
엘리엣은 삶의 방향을 잃고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자기 자신과 현대인에게 자기 반성을 위해 절망하는 사람들 앞에서 유토피아가 아닌 황무지를 보여주었다. 당시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현실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 속에 부활의 의미를 숨겨 놓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용을 통해 떠올리곤 했던 그의 시를 근래 자주 떠올렸다. 우리 사회가 전쟁 후의 후유증을 앓는 것은 아니지만 가파른 경제 성장으로 사회적 번영을 누리며 코로나 역병을 앓고 나서 나아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미 산업, 노동시장의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환경 전반에 걸쳐 여가, 문화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세계적으로 불안한 국제 정세에 지정학적 위기 심화 가능성으로 지금의 경제적 변화가 전과 다르게 회복하거나 성장하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기후위기 등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에 놓인 셈이다. 이런 시국에 해결안을 제시한다며 내놓는 총선과 관련한 공약들은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당장 국가 미래에는 관심도 없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표나 얻어보자는 내용이다.
꽃피는 4월, 100년도 더 된 오래 전 시가 더욱 생각나는 이유는 이런 비판적 성찰이 부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총선의 시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가치와 윤리 등, 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이 매번 총선을 통해 무엇이 바뀌겠는가. 우리 사회에 대한 개개인의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망각의 눈으로 덮힌 사회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봄이 없는 겨울이 지속될 것이고 봄이 없다면 명백히 여름과 가을도 오지 않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시 ‘황무지’는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토마스 스턴스 엘리엣(T.S. Eliot)의 시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의 하나’라고 손꼽히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시다.
이 수수께끼 같은 시가 탄생한 시대는 암울하고 무기력한 사회였다. 그가 시를 쓰게 된 이유가 자신의 개인사였음을 추후 술회하기도 했지만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사회에 만연한 우울 그리고 급속도로 현대화됨에 따른 정신적 피폐를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했다.
실제로 시가 발표된 1922년의 미국과 유럽은 전후 다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가담한 미국이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은 번영을 거머쥔 반면에 유럽은 몰락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경기 호황을 누리는 듯했지만 전쟁에서 비롯된 충격과 공포의 경험 그리고 전쟁 사망자의 3배가 넘는 스페인 독감의 여파는 사회적 심리 상태를 히스테리로 몰고갔다. 이러한 불안의 징후는 미국에서 유럽에까지 끝없는 진보라는 당시 인류의 염원을 산산조각 냈다.
엘리엣은 삶의 방향을 잃고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자기 자신과 현대인에게 자기 반성을 위해 절망하는 사람들 앞에서 유토피아가 아닌 황무지를 보여주었다. 당시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현실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 속에 부활의 의미를 숨겨 놓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용을 통해 떠올리곤 했던 그의 시를 근래 자주 떠올렸다. 우리 사회가 전쟁 후의 후유증을 앓는 것은 아니지만 가파른 경제 성장으로 사회적 번영을 누리며 코로나 역병을 앓고 나서 나아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미 산업, 노동시장의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환경 전반에 걸쳐 여가, 문화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세계적으로 불안한 국제 정세에 지정학적 위기 심화 가능성으로 지금의 경제적 변화가 전과 다르게 회복하거나 성장하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기후위기 등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에 놓인 셈이다. 이런 시국에 해결안을 제시한다며 내놓는 총선과 관련한 공약들은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당장 국가 미래에는 관심도 없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표나 얻어보자는 내용이다.
꽃피는 4월, 100년도 더 된 오래 전 시가 더욱 생각나는 이유는 이런 비판적 성찰이 부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총선의 시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가치와 윤리 등, 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이 매번 총선을 통해 무엇이 바뀌겠는가. 우리 사회에 대한 개개인의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망각의 눈으로 덮힌 사회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봄이 없는 겨울이 지속될 것이고 봄이 없다면 명백히 여름과 가을도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