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미국 흰불나방 유충의 습격…가로수 수천그루 고사 위기
잎사귀 닥치는대로 갉아먹어 ‘가로수 킬러’…광주 7천여그루 피해
1년 두차례 발생하다 고온다습한 올해 세차례 번식해 개체수 폭증
전문가 “구청들 방제 시기 놓쳐 확산” 지적 속 적극적인 방제 나서야
2023년 10월 04일(수) 19:22
4일 광주시 서구 양동 광주천변의 나무가 미국흰불나방 유충 피해로 고사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가로수 킬러’로 불리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이 폭증해 광주지역 가로수 수천그루가 고사위기에 놓였다.

4일 광주일보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광주시 서구 양동시장 일대 광주천변에는 노랗게 말라 죽은 나무들이 수십그루 늘어서 있었다.

이들 나무에는 잔가지 하나하나마다 하얀 털이 달린 유충들이 들어앉아 잎사귀를 닥치는대로 갉아먹고 있었다. 유충이 거미줄처럼 실을 토해내 만든 그물망도 가지 곳곳에 흉측하게 남아 있었다.

나무에서 떨어져 산책로나 다리 난간 등에서 기어다니는 유충도 적지 않았다.

산책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은 유충이 빼곡히 들어선 나무를 보고 놀라거나 산책로를 기어다니는 유충을 피해 다니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유충은 동구 학동 양림교 일대부터 북구 임동 챔피언스필드 인근까지 퍼져 있어 줄잡아 피해를 입은 가로수만 100여그루가 넘어 보였다. 같은 날 광산구 신창제, 풍영정천, 북구 양산호수공원 등지에서도 “벌레 떼가 공원에 퍼졌다”는 목격담이 잇따랐다.

미국흰불나방으로 인한 피해는 지난 2019년부터 광주·전남을 비롯한 전국에서 잇따랐다.

광주시에 따르면 올해 광주에서는 가로수 7632그루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 중 서구에서만 7285그루가 고사 위험에 노출됐다.

지난 2019년에는 3만 1000여그루가 피해를 입을 만큼 개체수가 폭증했으나, 2020년부터는 광주시에서 별도의 집계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피해량이 줄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개체수가 급증한 탓에 지난 8월에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산림병해충 발생 경보를 관심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심화되고 올해 비가 많이 오는 등 환경이 변화하면서 미국흰불나방 개체수가 폭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통 1년에 두 차례 발생하는 유충이 올해는 9월 들어 벌써 세 번째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남농업기술원 관계자는 “미국흰불나방은 당초 3~5월, 8~9월 두 차례 발생하는데, 지구온난화로 전남 지역에서는 세 차례까지 발생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올해는 8~9월에 고온다습한 환경이 이어지면서 미국흰불나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돼 개체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광주기상청이 발표한 ‘2023년 여름철 기후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장마(6월 25∼7월 26일)기간 광주에 1102.5㎜의 비가 내려 역대 장마철 가운데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같은 기간 광주·전남 평균 강수량도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많은 765.5㎜로 집계됐다. 여름철 광주·전남 평균 기온은 25도로 평년(24.2도)보다 0.8도 높았다.

가로수 관리 주체인 광주시 5개 구청이 방제를 제 때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농업기술원에 따르면 미국흰불나방은 아직 어릴 때인 1~2령기 유충일 때 방제해야 효과적이다. 친환경 농약 등 약제를 유충에게 직접 살포하는 방식이다.

전남농기원 관계자는 “유충이 그물망에서 빠져나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면 방제 효과가 낮아지게 마련이다”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방제를 서둘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중태 나무병원 원장은 “9~10월 늦은 시기 유충이 잎을 죄다 먹어치우면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한 양분을 만들어내질 못하고, 결국 고사하거나 내년 봄꽃도 피우지 못하게 된다”며 “7~8월부터 조기에 방제를 했어야 해야 하는데 적기를 놓쳐 결국 재창궐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지자체에서 더 적극적인 방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 미국흰불나방은=지난 1958년 한국에 유입된 외래종으로, 유충일 때 가로수나 활엽수 등 여러 나무의 잎을 갉아먹어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유충은 검은 몸체에 흰 털이 난 것이 특징으로, 도심 가로수나 공원, 하천변 인근에 서식하며, 한 나무에서 동시에 수백마리씩 부화해 나뭇잎 맥만 앙상하게 남겨놓아 광합성을 방해해 가로수를 고사시킨다.

어릴 때인 1~3령기에는 실을 토해내 잎을 둘러싸고 그물망을 만들어 군집생활을 하다가 4~5령기에 집에서 나와 흩어지는 특성이 있다.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 한 나무를 고사시킨 뒤 다른 나무로 옮겨가 피해를 준다. 성충 한 마리당 600~700여개의 알을 낳으며, 유충은 한 마리당 100∼150㎠의 잎을 갉아먹는다.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뿐 아니라 신체에 닿았을 경우 피부병이나 각막염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