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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화를 읽는다 -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3년 09월 25일(월) 00:00
우화는 보통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란 사람을 위한 일이니, 우화는 결국 동물을 통해서 사람 이야기를 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사람아, 사람아’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할 때면 우화를 다시 읽는다.

‘사람아, 사람아’는 중국의 작가 다이 호우잉의 유명한 소설 제목이다.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라는 한 줄이 여전히 선명하고 깊게 남아있다. 이 작가는 세상이 복잡해지는 것은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일으키는 사단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두려움 때문에 가세하는 사람들, 여기에 머리가 굳은 사람들이 합세함으로써 만들어 내는 혼란이라는 의미다. 이런 부류 사람들이 합해지면 단순하고 자명한 일이 고통스럽게 복잡해진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난장판이 일상이 될 때 ‘사람 되기’를 다시 생각하기에는 우화만한 것이 없다.

카프카(1883-1924)는 1917년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라는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변신’과는 반대로 동물이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피터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진 원숭이가 자신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고하는 내용이다. 애초에 피터는 아프리카 야생에서 살던 원숭이다. 피터는 어느 날 물을 마시려다가 밀렵꾼들의 총에 맞고 증기선에 실려서 유럽으로 옮겨졌다. 이제 자유로운 야생으로 갈 수 없게 된 피터는 동물 우리에 갇혀서 죽거나 동물원에 갈 운명이다. 이 상황에서 피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 즉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자유가 아니고 살아남기 위한 현실 속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가 지금 갇혀있는 우리를 탈출하는 것이니 목숨을 걸어야 한다. 피터는 사람을 상대로 싸우면서 탈출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람 흉내를 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악수를 가장 먼저 배운다. 자신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악수, 이 얼마나 영리한 원숭이인가.

이제 피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인간화’한다. 이 과정이 원숭이인 피터에게는 지옥 같은 일이다. 그런데 피터가 ‘사람’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참 민망하고 씁쓸하다. 사람 되기 위한 조건이 고작 침 뱉기, 담배 피우기, 마지막으로 술 마시기다. 카프카는 이를 통해서 사람이란 원숭이 피터가 보기에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으며 무책임하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말하려는 것일까. 침 뱉고, 담배 피우며, 술 마시기가 동물에서 사람이 되는 길이라니. 누군가는 이렇게 해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면은 원숭이인 피터에게는 자기 기만이며 자기 배신이다. 피터는 살기 위해서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일 뿐,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독한 노력 끝에 축제가 열리던 날 피터는 마침내 술 마시기에 성공한다. 바로 이때부터 피터는 사람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사람들의 언어가 사실은 술주정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인가. 사람 간 대화가 사실은 공허한 술주정에 불과한가. 심장의 얼음을 깨는 도끼 같은 카프카적 날카로움에 뜨끔하다. 사람처럼 변한 피터는 이제 연회와 학술 모임에 참석하면서 사람만큼 바쁘게 산다.

그렇다면 피터는 ‘사람’이 되었고, 자유를 되찾았을까. 아니다. 피터는 여전히 사람의 모습을 하도록 사육당한 원숭이일 뿐이다. 주어진 상황에 길들여지고, 오직 살려는 본능적 욕망과 강요된 규칙에 순종하는 피터, 그가 배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피터가 배운 자유는 쉽고 편한 것을 모방하는 기술일 뿐 삶을 세우고 지탱하는 그 치열한 가치로서의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터가 가히 침을 뱉고 술 마시기와 언어 사용에 능숙할수록, 깊이 사육당한 흔적과 모방 된 술주정 언어의 껍데기들은 오히려 피터의 정체성을 더 드러낸다. 그 누구도 자유의 가치를 실천 없이 모방과 사육당하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