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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보행길, 프롬나드(Promenade)- 노경수 광주대 부동산학과 교수
2023년 09월 18일(월) 00:00
자동차 시대가 오기 전 도보와 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시절에 광주에서는 청장년층이 충장로 일대를 특정 목적 없이도 친구들과 함께 상가나 사람 구경하러 일주일에 서너 번씩 돌아다니곤 했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도심 보행길을 프롬나드(promenade)라고 한다. 유럽, 미주 등지에서 시민들이 가까운 도심 속에서 언제든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보행 전용길의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외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고 승용차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민들의 도심 보행 활동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최근 도시재생과 함께 마을이 화두이고 걷기가 유행인 시대가 왔다. 서구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걷기가 다시 각광을 받게 된 시기는 대략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그 이전의 개발 위주의 시대와는 달리,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이를 반영하는 도시공간 속에서 살기 좋음, 건강함, 흥미로움이 재조명되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에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나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통해서 비로소 도시는 존재한다. 도시 안을 돌아다니고 상점, 공연장, 카페, 공원 등과 친해짐으로써 도시는 재창조되고 그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고 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둘레길, 건강을 위한 황톳길, 폐선부지의 푸른길, 성지 순례길 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도심 및 마을 보행길인 프롬나드에 관해서는 크게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덴마크의 도시설계가 얀 겔(Jan Gehl)은 프롬나드를 포함한 공개 공간에서의 활동을 크게 세 가지, ‘필수적 활동’, ‘선택적 활동’. ‘사회적 활동’으로 구분해 설명하였다. 필수적 활동은 ‘목적지로 단순히 이동’하는 활동이다. 선택적 활동이란 산책, 서성이기, 잠시 앉기 등 필수적 활동 외에 부가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이다. 사회적 활동이란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활동으로, 단순히 길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행동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도 포함한다.

얀 겔에 의하면 좋은 도시, 좋은 동네의 조건 중 하나가 선택적 활동과 사회적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두 가지 활동이 많이 이뤄지는 공간이 전통적으로 마을 프롬나드이다. 여기에서는 이동을 위한 통로뿐만이 아니라 산책, 머무름, 놀이 문화가 만들어지는 동네의 여가 공간이자 놀이터, 만남의 공간이다.

성공적인 프롬나드라고 한다면 어떠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 사람들을 만나거나 구경하려고 프롬나드에 오는 것이므로 그곳에서의 보행자 밀도를 높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음식점이나 작은 상점들이 군집 형태로 모이게 하되, 그 자체가 흡인력 있는 장소이어야 한다. 프롬나드의 길이는 450미터 정도가 적당한데, 광주의 경우로 본다면 충장로1가 입구에서 충장치안센터(파출소)까지의 거리이다. 보행 밀도는 최소 10평당 1명 정도가 적당하고 도로 폭은 생각보다 넓지 않은 3~6미터면 충분하다.

비록 그곳을 찾는 본래 이유가 사람을 만나거나 구경하는 데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어딘가 ‘목적지’를 가지고 산책하는 것이 가볍고 부담이 없다. 목적지는 카페, 우체국 등과 같이 구체적일 수도 있으며 주변 지역 일부를 둘러보는 정도일 수도 있다. 좋은 도시의 거리는 평범한 보행자가 시속 약 5킬로미터로 이동하면서 약 5초에 한 번꼴로 흥미로운 새로운 장소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건물 전면에 특이한 형태가 없으면 더 빨리 지나간다. 사람들은 건물의 전면이 활짝 열려 있고 활기찬 도시 풍경에서 걷고 싶어하고 실제로 이런 곳에서는 행동 유형도 달라진다. 건물 1층 정도만 외관과 물리적 구조를 바꿔도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에 극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그간 하천, 공원길, 학교 운동장 등 건강을 위해 걷고 산책하는 공간이 많아져 시민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가족, 마을 이웃과 함께 흥미를 끄는 산책, 구경, 만남 등을 즐길 수 있는 마을 프롬나드가 늘어난다면 ‘저녁이 있는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