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코로나19 엔데믹 첫 여름휴가
‘나만의 休’ 찾아 떠나볼까
성진기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 ‘몽(夢) 클래스’ 회원과
니체·쇼펜하우어·하이데거·괴테 등 인문학 ‘테마여행’
집에서 보내는 ‘홈캉스’…호텔· 숲·농촌·섬 등 ‘00캉스’
국내 호젓한 여행지 찾아가는 여름휴가 트렌드 변화도
성진기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 ‘몽(夢) 클래스’ 회원과
니체·쇼펜하우어·하이데거·괴테 등 인문학 ‘테마여행’
집에서 보내는 ‘홈캉스’…호텔· 숲·농촌·섬 등 ‘00캉스’
국내 호젓한 여행지 찾아가는 여름휴가 트렌드 변화도
![]() 조의현 작 ‘하늘 계단’ |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했다. 2020년 1월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 3년4개월만의 일이다. 팬데믹 종식(엔데믹·감영병의 풍토병화) 이후 마스크를 벗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름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할까? 그동안의 ‘집콕’이나 ‘랜선’을 탈피해 ‘나만의 휴’(休)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니체의 숨결 찾아 떠난 ‘철학 여행’= 지난 5월말 원로 철학자인 성진기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와 니체를 함께 공부하는 철학공부 모임 ‘몽(夢) 클래스’ 도반(道伴) 20여명이 서유럽으로 떠났다. 단순 관광이 아닌 니체와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괴테 등 철학자와 대문호의 숨결을 찾아 가는 인문학 테마여행이었다. 12박 13일 동안 서유럽 5개국(독일·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바티칸시티)을 이동하며 스위스 ‘니체 하우스’(실즈마리아)와 독일 쇼펜하우어 묘지(프랑크푸르트), ‘괴테하우스’, 프라이부르크대학 등지를 돌아봤다. 김정희 시인·(재)지역문화교류재단 이사는 여정을 마무리하는 바티칸시티에서 시 ‘로마의 이별’을 썼다.
“뉘엿 뉘엿 해 저무는 나이/ 귀밑머리 쓸어 올리며/ 노을빛 조각보 같은 찬란으로 로마에 왔다/이천년 전 영웅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수 세기 영화로운 날들이/ 스펙트럼으로/ 돌과 흙의 신전에 갇혀서…….”
또한 김 시인은 광주에 돌아와서 ‘유럽의 바람 속에서 은유의 철학을’이라는 제목을 붙인 에세이를 써서 일간지에 기고했다. 앞으로도 이번 여행의 기억을 글로 계속 풀어갈 생각이다.
“니체는 어느 한곳에 머물렀다기보다는 여행을 통해 일상에 선명한 윤곽과 예술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는 스위스의 절경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들꽃 가득한 산길을 걸을 때 호기심의 나침반을 강력하게 움직이지 않았나, 그리고 그의 말대로 ‘행복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겠구나,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자연 속에서 인간의 불완전함, 불확실성을 느꼈다 하는 것만이 아니고 풍경이 그려내는 은유를 우리가 다 읽어낼 수는 없겠지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각자 해결해야 할 몫인 것 같아요. 여러 군데를 돌았기 때문에 기억이 흐려진 곳들도 있어요. 니체는 ‘제때 기억할 줄 알아야 하고 제때 잊을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지요. 단순 관광보다는 테마를 정해서 목적에 충실한 여행을 하는 것이 정체성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원탁 시’ 동인으로 활동하는 시인은 올 1월부터 ‘몽 클래스’에서 20~60대 회원들과 함께 니체를 공부해오고 있다. ‘몽 클래스’는 성진기(83)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1996년 문을 연 대중을 위한 인문학둥지 ‘카페 필로소피아’(Cafe Philosophia)’에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철학공부모임 이름이다. ‘몽 클래스’를 지도하는 성 교수는 한국 철학회장과 한국 니체학회장을 역임한 원로 철학자이다.
“이번 유럽 여행은 나름대로 인문학 테마 여행의 시도였습니다. 평소 인문학 수업을 통해 익혀온 지식들을 그 발원의 현장에서 느끼고 사유해보려는 구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실즈마리아에 있는 ‘니체 하우스’를 방문, 건물 옆에 설치된 조형물 ‘독수리와 뱀’ 앞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의 동물들’이라고 말한 독수리와 뱀의 상징인 ‘지혜와 용기’에 대해 실감나는 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총괄한 성 교수는 검은 숲으로 불릴 정도로 울창한 독일의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산길을 달리면서 무등산을 떠올렸다. 이름난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도 광주의 모교가 오버랩 됐다. 대부분 선진국 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만 여행지 실제에 임하면 바로 머릿 속은 ‘나’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자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행은 동행자와 관계 맺음을 통해 덤으로 인생 공부를 하게 됩니다. 동일한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 그 느낌을 교감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이루어져 평소 강사의 일방적 설명으로 일관하는 실내 강의의 옹색함을 극복할 기회가 생깁니다. 더욱 좋은 것은 자신의 생각을 활발히 드러냄으로써 학문하는 희열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많은 생활이 숨 막혔던 터라 해외여행은 신나면서도 한편 그럴 사정이 못 되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 적지 않은 나들이였습니다.”
◇‘랜선 여행’에서 ‘분노의 여행’으로 변화= 3년4개월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맞는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가 높다. 공항을 비롯해 국내 주요 관광지에도 여행자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있다. 여행 관련 신조어도 바뀌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2020~2022년 ‘랜선 여행’과 ‘방구석 1렬’, 이시국여행(코로나 19 확산기에 여행 즐기는 자)이 주로 쓰였다면 ‘위드 코로나’에 접어든 요즘은 ‘분노의 여행’이다. 그동안 억눌렸던 여행 욕구를 분풀이하듯 표출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국내 호젓한 여행지를 찾아가는 여름휴가 트렌드 또한 변화하고 있다.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홈캉스’를 비롯해 호텔, 숲, 농촌, 섬 등 휴가 장소에 바캉스를 결합시킨 ‘00캉스’ 용어로 압축된다. 코로나 이전과 다르게 우르르 해수욕장이나 계곡으로 몰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휴’(休)를 찾는다는 이들이 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 고물가와 폭염, 짧은 휴가일정 때문에 휴가를 포기하는 ‘휴포족’도 생겨나고 있다.
◇‘여행하는 인간’…“왜 나는 여행을 하는가?”=“새벽 3시, 나는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탈리아 기행’ 중)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중)
여행가방 하나와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려서 홀로 우편마차에 몸을 실은 괴테와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 하루키.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동력은 뭘까? 괴테는 30대 후반 20개월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정신적 개안’을 하고 대문호로 거듭난다. 하루키 역시 끊임없이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문장을 써나가는 상주적 여행자”라고 한다. 또한 기행문을 “새로운 소설을 써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사색의 노정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1999년)에서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이자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본능적이라 할 수 있다. 7만여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현생인류의 DNA에 각인돼 있을 터. 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쳐 오며 우리는 여행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랜선’이 아닌 실제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쉬며 자신을 ‘성찰’하는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엔데믹은 여행과 휴가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또한 김 시인은 광주에 돌아와서 ‘유럽의 바람 속에서 은유의 철학을’이라는 제목을 붙인 에세이를 써서 일간지에 기고했다. 앞으로도 이번 여행의 기억을 글로 계속 풀어갈 생각이다.
“니체는 어느 한곳에 머물렀다기보다는 여행을 통해 일상에 선명한 윤곽과 예술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는 스위스의 절경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들꽃 가득한 산길을 걸을 때 호기심의 나침반을 강력하게 움직이지 않았나, 그리고 그의 말대로 ‘행복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겠구나,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자연 속에서 인간의 불완전함, 불확실성을 느꼈다 하는 것만이 아니고 풍경이 그려내는 은유를 우리가 다 읽어낼 수는 없겠지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각자 해결해야 할 몫인 것 같아요. 여러 군데를 돌았기 때문에 기억이 흐려진 곳들도 있어요. 니체는 ‘제때 기억할 줄 알아야 하고 제때 잊을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지요. 단순 관광보다는 테마를 정해서 목적에 충실한 여행을 하는 것이 정체성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원탁 시’ 동인으로 활동하는 시인은 올 1월부터 ‘몽 클래스’에서 20~60대 회원들과 함께 니체를 공부해오고 있다. ‘몽 클래스’는 성진기(83)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1996년 문을 연 대중을 위한 인문학둥지 ‘카페 필로소피아’(Cafe Philosophia)’에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철학공부모임 이름이다. ‘몽 클래스’를 지도하는 성 교수는 한국 철학회장과 한국 니체학회장을 역임한 원로 철학자이다.
“이번 유럽 여행은 나름대로 인문학 테마 여행의 시도였습니다. 평소 인문학 수업을 통해 익혀온 지식들을 그 발원의 현장에서 느끼고 사유해보려는 구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실즈마리아에 있는 ‘니체 하우스’를 방문, 건물 옆에 설치된 조형물 ‘독수리와 뱀’ 앞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의 동물들’이라고 말한 독수리와 뱀의 상징인 ‘지혜와 용기’에 대해 실감나는 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총괄한 성 교수는 검은 숲으로 불릴 정도로 울창한 독일의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산길을 달리면서 무등산을 떠올렸다. 이름난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도 광주의 모교가 오버랩 됐다. 대부분 선진국 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만 여행지 실제에 임하면 바로 머릿 속은 ‘나’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자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행은 동행자와 관계 맺음을 통해 덤으로 인생 공부를 하게 됩니다. 동일한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 그 느낌을 교감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이루어져 평소 강사의 일방적 설명으로 일관하는 실내 강의의 옹색함을 극복할 기회가 생깁니다. 더욱 좋은 것은 자신의 생각을 활발히 드러냄으로써 학문하는 희열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많은 생활이 숨 막혔던 터라 해외여행은 신나면서도 한편 그럴 사정이 못 되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 적지 않은 나들이였습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쇼펜하우어 묘지를 찾은 성진기 교수와 ‘몽(夢)클래스’ 회원들. |
국내 호젓한 여행지를 찾아가는 여름휴가 트렌드 또한 변화하고 있다.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홈캉스’를 비롯해 호텔, 숲, 농촌, 섬 등 휴가 장소에 바캉스를 결합시킨 ‘00캉스’ 용어로 압축된다. 코로나 이전과 다르게 우르르 해수욕장이나 계곡으로 몰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휴’(休)를 찾는다는 이들이 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 고물가와 폭염, 짧은 휴가일정 때문에 휴가를 포기하는 ‘휴포족’도 생겨나고 있다.
![]() 김경민 작 ‘해변의 가족(2014년 작)’ |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중)
여행가방 하나와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려서 홀로 우편마차에 몸을 실은 괴테와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 하루키.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만든 동력은 뭘까? 괴테는 30대 후반 20개월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정신적 개안’을 하고 대문호로 거듭난다. 하루키 역시 끊임없이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문장을 써나가는 상주적 여행자”라고 한다. 또한 기행문을 “새로운 소설을 써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사색의 노정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1999년)에서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이자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본능적이라 할 수 있다. 7만여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현생인류의 DNA에 각인돼 있을 터. 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쳐 오며 우리는 여행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랜선’이 아닌 실제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쉬며 자신을 ‘성찰’하는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엔데믹은 여행과 휴가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