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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의 부족한 디테일 -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3년 05월 30일(화) 23:00
광주의 기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5월이면 가슴앓이를 한다. 5·18은 이미 오래 전 국가 기념일이 됐고, 법적 행정적으로도 완성된 민주화운동이 됐다. 나아가 아시아 역사에서, 시민의 힘으로 한 국가의 민주화를 일군 현대 민주주의 운동사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5·18이 43주년을 맞은 올해도 광주의 기자들은 매년 되풀이되는 오월의 가위눌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광주 지역에서 5·18을 전담하는 현장 기자들은 20대에서 40대 초반의 기자들로 대다수가 5·18 이후 세대이다. 5·18이 40년을 지나면서 특히 20대의 젊은 기자들에게 5월 한 달은 역사 속 미로 찾기의 연속이기도 하다. 40여 년 전 아버지 세대의 기자들로부터 대를 거쳐 숙명처럼 내려 온 5·18 취재는, 강을 거슬러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본능 같은 5월의 DNA가 그들에게 흐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

오월이 오면, 광주의 기자들은 말이 없다. 지난 1년 동안 추적해 오던 그날의 진실, 발포자와 암매장을 명백히 밝힐 모든 재료를 모아 5월 18일 이전에 기어이 보도하겠다는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5·18 담당 기자는 수년 단위로 바뀌지만, 발포자와 암매장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마음만은 변치 않고 이어진다. 모두가 5월을 취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5·18 기자가 되면 그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업보인양 ‘그날’을 취재한다. 말하지 않아도 이유를 알고 있고, 무엇보다 목표가 명징한 탓이리다. ‘40년이 지났는데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시대가 바뀌었는데, 이제는 변해야지’라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들어도 꺾이지 않는 마음은 올해도 이어졌다.

광주일보는 올 5·18 기간에 그동안 80년 당시 희생자의 시신이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됐다는 수많은 제보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했던 암매장 현장을 찾아 보도하는 등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다. 이제 5월을 보내고 또다시 내년 44주년 5·18을 준비해야 한다.

이 같은 언론의 헌신, 시민들의 의식, 5월 단체의 투쟁을 바탕으로 5·18은 국가 행사이자 민주주의 성공의 기념일로 완전히 정형화됐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이자 인권·평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모두는 광주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광주를 가꾸는 데에는 소홀했다.

기자가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서 5월 기간 겪은 광주의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고하려 한다. 충장로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의 고발성 기고쯤으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광주는 사실상 5월 초면 추모와 행사 모드에 들어간다. 전국 각지에서 외지인들이 찾아 오고, 크고 작은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그런데 5월 15일 오전 11시께 광주 금남로 5가 인근에서 차선 도색을 하는 여러 대의 차량들과 마주쳤다. 365일 하고 많은 날 중 5·18 기념식을 사흘 앞둔 상황에서 차선을 칠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5·18 주요 항쟁지인 금남로에서. 다음날인 5월 16일 오전 10시 40분, 광주시 동구 불로동 옛 녹십자병원 일대에서 도로 포장을 하는 롤러차를 발견했다. 너무도 화가나 욕설이 튀어 나왔다.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사 담당 공무원이든 관련 회사든 최소한 계약 단계에서부터 외지인 방문이 많고, 추모 기간인 5·18일 주간은 피했어야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 걸맞은 도시로

5·18 행사가 모두 끝난 5월 28일, 충장로 ‘케이팝스타의 거리’ 입구에는 먹다 버린 음료수 일회용 컵 수십 개를 비롯해 쓰레기들이 수북히 쌓여 시민은 물론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게다가 평일 오후 7~8시께만 되면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이 충장로 일대의 식당들을 순회한다. 수거 차량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울 때 나는 썩는 냄새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는 손님들의 기분은 물론 타 지역 사람들의 광주에 대한 인상을 깎아내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5월 중 광주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 풍경에 대한 회사원의 단상이다. 그저 출퇴근 과정에서 부딪혔던 내용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부디 다른 지역들은 별일이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거대한 자부심이 무모한 자신감으로 변한 탓일까. 광주는 자신을 가꾸는 디테일이 너무도 부족한 도시로 전락했다. 도시의 현재 가치가 아무리 역사성에 기반하고 있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무시할 수는 없다. 현대 민주주의 운동사에서 광주가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와 상징이 아무리 숭고해도, 남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더러우면 도시의 가치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