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여행자들의 광주 아지트- 김미은 문화부장·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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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디쯤 극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맞아. 영화 보고 극장 바로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도 먹었었지.” “이제는 모두 사라졌겠죠.”
얼마 전 충장로 한복 거리를 걷다 70대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대화에 등장하는 영화관은 광주극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바로 앞’의 중국집은 어딜까 생각했다. 극장 옆 오래된 중국집인 신락원과 영안반점은 영화관과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다.
궁금증이 일어 극장 측에 물었더니 맞은 편에 중국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며칠 후 극장을 찾았다 한 가게에서 ‘정통 중화요리, Since 1949’라는 흔적을 발견했을 땐 그 부부가 수십 년 만에 다시 광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괜히 한번 상상해 봤다. 올해 88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에서 여전히 영화가 상영된다는 걸 안 부부는 당시 무척 놀라는 모습이었는데, 두 사람이 그날 어떤 대화를 이어갔을지도 궁금하다.
광주극장과 베토벤
지난 2월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흔 살 생일을 축하하는 연주회였다. 지난 1982년 문을 연 베토벤은 필하모니, 르네상스, 고전 등 클래식 음악감상실이 다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날 음악회는 고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재능 기부로 참여해 더 의미가 있었다. 옛 모습을 간직한 공간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려준 60대 프로 아티스트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까지 다섯 명의 무대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베토벤에 얽힌 추억들을 꺼냈다. 대학 시절, 시내로 거리 시위를 나왔다 최루탄에 절은 몸을 맡기고 눈물 콧물 흘리며 위안을 받았던 곳,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었던 곳이라 했다. 어떤 이는 민주화운동으로 수감됐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난 곳이 베토벤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오래된 공간’은 그 장소에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다. 요즘에는 ‘레트로 여행자’의 발길이 이어지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음악회 때, 나이 지긋한 손님들 사이에서 일손을 돕던 30대 클로이는 광주를 찾는 이들을 레트로 감성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인터넷을 통해 ‘오래된 미래’를 테마로 소규모 여행 모임을 꾸리는 그는 광주극장, 장인 정신이 배어 있는 충장로의 오래된 가게, 감각적인 청년들 상점, 베토벤을 묶어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참여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외지 여행자들은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공간’들을 신기해 한다고 한다. 그녀는 우연히 ‘이 장소들’을 발견했을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며칠 전 들렀을 땐 개별 여행자들도 눈에 띄었다.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서울 출신 20대 여성은 양림동을 거쳐 베토벤에서 한숨 돌리는 참이었고, 초등학생 아들에게 공간을 보여주고 싶어 왔다는 40대 부부도 있었다.
최근 광주시가 올해 첫 ‘1000만 관광도시’ 진입을 선언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여행과 각종 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그 어느 때보다 광주의 문화행사도 풍성하다.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근대 문화의 보고 양림동은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관람객들의 호응으로 연장 전시를 결정한 ‘원초적 비디오 본색’과 ‘사유의 정원’ 등 입소문이 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 역시 관광객을 유인하는 요소다.
광주 관광의 숨은 자산
관광객의 규모를 키우는 대형 행사들과 더불어 1년 365일 언제나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다른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공간들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문화자산이다. 오래된 공간에는 그 만큼의 사연이 있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전해지고 또 다른 이야기가 더해지며 장소를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든다.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들을 함께 키우고 지켜갈 때 우리 삶터는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오는 6월 여름 음악회를 시작으로 이제 베토벤에서는 계절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이 열린다. 마흔 살 기념 연주회를 열었던 단골들, 음악회 때 세월을 건너 다시 베토벤을 찾았던 이들이 의기투합한 행사다. 음악회 후 고객이 기증한 흰색 피아노에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를 것이다.
베토벤의 이야기가 계속되듯, 광주의 수많은 공간들의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지길.
/mekim@kwangju.co.kr
얼마 전 충장로 한복 거리를 걷다 70대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대화에 등장하는 영화관은 광주극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바로 앞’의 중국집은 어딜까 생각했다. 극장 옆 오래된 중국집인 신락원과 영안반점은 영화관과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다.
지난 2월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흔 살 생일을 축하하는 연주회였다. 지난 1982년 문을 연 베토벤은 필하모니, 르네상스, 고전 등 클래식 음악감상실이 다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날 음악회는 고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재능 기부로 참여해 더 의미가 있었다. 옛 모습을 간직한 공간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려준 60대 프로 아티스트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까지 다섯 명의 무대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베토벤에 얽힌 추억들을 꺼냈다. 대학 시절, 시내로 거리 시위를 나왔다 최루탄에 절은 몸을 맡기고 눈물 콧물 흘리며 위안을 받았던 곳,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었던 곳이라 했다. 어떤 이는 민주화운동으로 수감됐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난 곳이 베토벤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오래된 공간’은 그 장소에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다. 요즘에는 ‘레트로 여행자’의 발길이 이어지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음악회 때, 나이 지긋한 손님들 사이에서 일손을 돕던 30대 클로이는 광주를 찾는 이들을 레트로 감성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인터넷을 통해 ‘오래된 미래’를 테마로 소규모 여행 모임을 꾸리는 그는 광주극장, 장인 정신이 배어 있는 충장로의 오래된 가게, 감각적인 청년들 상점, 베토벤을 묶어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참여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외지 여행자들은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공간’들을 신기해 한다고 한다. 그녀는 우연히 ‘이 장소들’을 발견했을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며칠 전 들렀을 땐 개별 여행자들도 눈에 띄었다.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서울 출신 20대 여성은 양림동을 거쳐 베토벤에서 한숨 돌리는 참이었고, 초등학생 아들에게 공간을 보여주고 싶어 왔다는 40대 부부도 있었다.
최근 광주시가 올해 첫 ‘1000만 관광도시’ 진입을 선언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여행과 각종 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그 어느 때보다 광주의 문화행사도 풍성하다.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근대 문화의 보고 양림동은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관람객들의 호응으로 연장 전시를 결정한 ‘원초적 비디오 본색’과 ‘사유의 정원’ 등 입소문이 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 역시 관광객을 유인하는 요소다.
광주 관광의 숨은 자산
관광객의 규모를 키우는 대형 행사들과 더불어 1년 365일 언제나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다른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공간들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문화자산이다. 오래된 공간에는 그 만큼의 사연이 있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전해지고 또 다른 이야기가 더해지며 장소를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든다.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들을 함께 키우고 지켜갈 때 우리 삶터는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오는 6월 여름 음악회를 시작으로 이제 베토벤에서는 계절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이 열린다. 마흔 살 기념 연주회를 열었던 단골들, 음악회 때 세월을 건너 다시 베토벤을 찾았던 이들이 의기투합한 행사다. 음악회 후 고객이 기증한 흰색 피아노에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를 것이다.
베토벤의 이야기가 계속되듯, 광주의 수많은 공간들의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지길.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