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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호 광주시 경찰유공자회장 “희생한 경찰들 예우 못받아…보훈처, 참전 경찰단체 인정해야”
정전까지 호남 전투 모두 참전
순창 가마골 전투서 얼굴에 총상
2023년 02월 12일(일) 20:10
“내 앞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쓰러져 간 전우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현상호(90) 대한민국 6·25참전 경찰국가유공자회 광주시 경찰유공자회장은 70여년 전 호남지역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같이한 전우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현 회장의 경찰공무원 인사기록카드에는 ‘1951년 4월 20일 순경 임명’이라고 기록돼 있다.

1934년생인 현 회장은 17살의 어린나이에 전남경찰국 소속 경찰이 됐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전남지역의 많은 경찰들이 전투경찰로 활약하다 희생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 회장은 해양소년단의 경험으로 경찰에 입문하게 됐다.

수많은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현 회장은 어린 나이의 호기에 무서운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현 회장은 “돌이켜보면 적군의 총탄에 쓰러져 간 사람이 전우가 아니라 나 였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아무 것도 몰랐다”면서 “당시에는 보급이 없고 주먹밥 한개에 의지해 전남과 전북을 두발로 걸어다니며 북한군과 전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전남 전투경찰이었던 현상호씨(원안)가 1951년 화순군 동복면에서 빨치산 퇴치 작전에 투입돼 동료들과 찍은 사진. <현상호 씨 제공>
1951년 경찰이 된 후 정전이 될 때까지 호남의 모든 전투현장에 참가한 현 회장은 1951년 8월 전북 순창군 가마골 전투에 투입돼 밤을 새며 고지를 지키다 얼굴을 스치는 총탄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6·25 당시 전투 경찰로 고생한 이들이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현 회장은 “6·25 경찰참전용사들은 보훈처 단체로 인정 받지 못해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한 채 이제는 하나둘 세상을 등지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경찰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6·25 참전 경찰 단체를 보훈처에서 인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일보=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