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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마스크에 가로막힌 삶…청각장애인 생활 불편 더 커져
[2월 3일 수어의 날…청각장애인 만나보니]
코로나에 수화통역 친숙해졌지만
표정도 언어인데 마스크에 가려져
상당수 한글 몰라 음식 주문 힘들고
은행·병원 가려면 3일전 통역신청
2023년 02월 02일(목) 21:00
제3회 수어의날을 하루 앞둔 2일 광주시 남구 월산동 ‘남구 농아인쉼터’에서 농아인들이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휩쓴 지난 3년 동안 브리핑 현장에서 리드미컬하게 손을 놀리며 표정과 몸짓을 더하는 수화통역사의 모습은 이젠 친숙한 장면이 됐다.

하지만 수어를 언어로 사용하는 광주지역 청각장애인(농아인)들의 삶은 코로나 이후 더 피폐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기준 광주시에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1만 783명에 달한다고 2일 밝혔다.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기에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농아인들은 병원이나 은행, 공공기관 등 개인업무를 볼 때 이들의 언어인 수어를 통역해 줄 수 있는 ‘수화통역사’를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광주시나 5개 자치구 등 공공기관에는 상주하는 수화통역사가 아예 없고 1만 여명이 넘는 광주지역 농아인들의 수어 통역을 해주는 수화통역사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농아인들은 수화통역사가 필요할 때 ‘빛고을 수어누리’ 앱이나 광주시장애인복지관 수어통역팀에 직접 문의해 신청할 수 있지만, 현재 광주시장애인복지관에는 6명의 수화통역사만이 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 2019년만 해도 18명이었던 수화통역사는 자격증을 2년 동안 따지 못하면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사회복지사의 열악한 처우 등의 이유로 계속 줄었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수화통역사 한명 당 1800명에 달하는 농아인의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단한 은행업무를 보거나 급히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최소 3일 전에 통역 신청을 해야 그나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정도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2일 오후 앱을 통해 현장통역을 신청해보니 ‘오늘 신청은 마감되었습니다’라며 오는 5일 이후에나 신청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글씨로 적어가면서 대화를 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수어사용 실태조사’ 결과, 청각장애인의 26.9%가 문자(필담)를 전혀 또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응답자도 42.6%로 농아인들 상당수가 ‘문맹’이란 얘기다.

청각장애는 대부분 선천적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닌 ‘수어’다. 문법 체계와 어휘 방식이 전혀 다른 한글은 그저 외국어일 뿐이라는 것이 농아인들의 얘기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제3회 한국수어의 날’(2월 3일)을 맞아 만난 광주지역 농아인들은 그동안 겪은 불편을 호소했다.

농아인들은 지난 3년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통화를 할 수 없고 일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하지만, 비대면이 일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또 수어에는 표정이 중요한데 마스크에 가려져 소통에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자리잡은 배달문화나 키오스크,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아인인 유정현(여·38)씨는 남들처럼 편하게 음식을 주문할 수 없다. 배달 앱을 켤 수는 있으나 한글을 잘 몰라 주문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씨는 “그나마 배달앱은 주변 한글을 알고 있는 농아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키오스크나 드라이브 스루의 경우 소리로 안내해주는 경우가 많아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초 이틀을 기다린 끝에 수화통역사와 은행을 방문한 김정희(여·43)씨도 간단한 통장을 만드는데도 2시간이 걸렸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김씨는 “은행원이 번호표를 뽑지말고 하염없이 기다리게 해 결국 일반 고객들이 모두 빠져나간뒤 업무를 볼 수 있었다”면서 “수화통역사를 통하는 3자 대면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 순서를 미룬 것 같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상황이 이렇자 농아인들은 문화생활 향유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잇다.

연극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정민(여·28)씨는 10여년 전 청각을 잃은 후 “문화생활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됐다”고 했다.

이씨는 “그나마 한글을 알아 영화에 자막을 제공해주는 서비스인 ‘가치 봄’을 통해 매달 한 편씩은 보고 있지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수연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 센터장은 “광주과학기술원 등과 협력해 광주중앙박물관에 작품을 수어로 설명해주는 AI서비스를 도입하고 광주 지하철 1호선에는 역 이름을 수어로 안내해주는 화면도 나오게 하는 등 여러모로 농아인을 위한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현기 기자 hyun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