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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출신 염창권 시인 “코로나 시국은 삶과 죽음의 경계점”
5년간 발표 작품 ‘오후의 시차’ 엮어
동아일보·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신인 작가들 스터디 활성화 필요”
2022년 12월 07일(수) 19:50
“코로나 시국이 우리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간단치 않습니다. 감염병의 실존적 환경 너머의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지요.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보여주는 경계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염창권 시인은 코로나 팬데믹의 의미를 그렇게 말했다. 깊이있는 해석에 호기심이 일었다. 광주교대 교수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그는 대상이나 현상을 쉬우면서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내는 ‘재능’이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겸손하다. ‘나는 부족하며 부족하기에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이렇게 시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이야기한다. 그저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은 아닌듯 하다. 언제나 진지하며 배움의 자세를 잊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 펴낸 시조집 ‘오후의 시차’(책만드는 집)는 다소 어둡고 칙칙한 책 표지가 눈에 띈다. 제목이 환기하는 나른한 오후의 느낌이 전해온다.

“어둡고 탁한 색깔로 되어 있는데 이건 제가 요청해서 디자인된 것입니다. ‘오후’라는 시간성의 설정 자체가 불온하게 오염된 실존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 오염된 실존적 지점을 ‘오후의 시차’라는 표제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그동안 네 권의 시조집과 세 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번 작품집은 5년 가까이 발표해온 시조들을 새 시집의 형태로 구성한 것이다.

그는 “내 작품의 스타일이 현대시조의 아방가르드라는 호칭을 들을 만큼 실험적 형태를 비롯해 사설시조의 비중도 높다”며 “지금까지 실험적으로 추구했던 것을 이번에 시도함으로써 소통과 ‘문학적 논란’의 지점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그는 도전적인 ‘문학청년’이었다. 사석에서 문학 얘기를 나눌 때면 새로운 시도, 새로운 시각의 아이디어를 풀어내곤 했다.

그는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1991년에는 소년중앙에 동시가 당선돼 일찌감치 ‘전천후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조는 우리의 옛 전통과 정서를 담아내며, 시는 현대시의 감성과 기발한 수사를 풀어내게 한다.

동시는 맑은 아이들의 심성에 근거한다고 하면 그의 내면에 자리한 ‘문학적 자아’는 상당히 다채롭고 포괄적이다.

그에게 시 쓰기는 삶의 본질에 육박하는 상징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 가운데 시조는 하나의 서사 덩어리로 완결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채롭다.

이번 시조집에서는 ‘여행자의 골목’이라는 연작시가 눈에 띈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물들과의 대화’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자아의 내면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곳에서 자아의 일면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혼밥, 혼술’이 대세입니다. 여행지에서도 혼자 있는 경우가 많지요. 타인과는 ‘시차’가 있는 생활을 하므로 동행을 두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여행지에서도 ‘너’라는 존재가 결핍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결핍된 상태로서의 타자이거나 그리워하는 대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인은 그와 같은 고독한 실존적 상태를 ‘여행자의 골목’으로 표현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물들로는 ‘맨홀’을 비롯해서, ‘가판대’, ‘철제 난간’, ‘송전탑’, ‘밀국수’, ‘칫솔’ 등과 같은 것들이다.

“점액질이 흐르는 도시의 하복부에서// 얼굴 하나 갓 솟은 꽃처럼 떠올랐다, 지하관을 따라가다 모서리를 잃었는지 길바닥을 굴러가는 바퀴처럼 위태했다, 생애의 자궁 속으로 울음을 쏟아붓는// 구멍을 매달고 있는 검은 꽃잎, 입술들!”

‘여행자의 골목2’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 ‘매홀’의 전문이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물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의 눈에는 새로운 의미로 포획된다. “점액질이 흐르는 도시의 하복부” 아래에는 “생애의 자궁 속으로 울음을 쏟아붓는” 그런 순간과 시간이 꿈틀거린다. 화자는 우리는 모두 세상에 던져진 ‘여행자’이며 그 여행자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심오하고 다채로운 상징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도 그는 발상의 참신성과 깊이를 강조한다. 결국 사유의 깊이는 시의 깊이를 결정한다. 문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철학 서적 읽기를 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즉시적인 감흥으로 시를 쓰기보다는 대상 이해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한 태도’”라고 덧붙인다.

그는 지역사회의 문학적 활성화를 위해 하나의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신인 작가들이 모여 스터디를 하거나 합평회를 하는 등 모임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현대성은 그에 걸맞은 스타일의 발견 없이는 정당한 표현도 없기” 때문이다.

“책을 잃거나 영화를 보면, 그 작가의 안목을, 연출가의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안목과 시선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잘 살아갈 수 있도록(정신적인 의미에서) 배우고 실천할 것입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