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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말하는 치명적 무지에 대하여-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1년 09월 27일(월) 01:30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바다. 그렇다고 해서 안 보이는 것을 잘 볼 수 있게 하거나 알아차리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상대방이 실제 모습을 숨기거나 과대 포장 또는 왜곡해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보고 판단하는 사람의 조건, 즉 관점의 토대와 이해의 조건이 완벽하지 못한 것에 더 큰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는 것,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여러 종류의 한계 안에서 살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이해 능력의 경계이자 관점의 토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 닫아 건 안방이라면 능력의 결핍과 편협한 시야의 한계가 그리 큰 문제가 될 이유가 없지만, 공적 영역과 사회적 관계 안에서라면 문제는 심각하고 그 후유증은 치명적이다.

우리 시야를 가로막는 대부분의 인식과 판단의 한계는 사회적인 학습의 결과다.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한계선들은 무기력을 안정감으로, 정체된 인식 능력을 합리적 판단력으로 왜곡하는 나태함에서 생겨난 미망의 파편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무지와 똑같은 무지함을 보여 주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인식의 한계는 세상과의 단절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주관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이 인식의 확장을 막는 장벽은 분노와 고통을 부르는 ‘넘사벽’이 아니라, 다른 많은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장애물’일 뿐이다. 이런 차단벽은 어떻게 설치되는가? 다른 전제와 맥락에서 말하고 있지만, 여기 매우 의미심장한 지점을 보여 주는 한 철학자의 주장이 있다.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해한다는 것은 우선 생각하고 판단하며 상황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태생의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답을 찾는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경험·인식·이해를 언어로 그려 낸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설령 표현한다고 해도 정확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요즘에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간다”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가을의 들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렇듯 언어는 세계에 대한 경험을 그려 내는 그림이며 함께 생각하는 토대를 만드는 도구이다. 생각하는 과정이 언어적이라는 점에서 생각은 일종의 언어이며, 이 언어의 한계는 말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생각의 한계다. 몇 마디의 토막 난 동의어의 무한 반복, 뻔한 서사에 뻔한 결말은 아무것도 없는 그림이며, 빈 그림은 무의미하다.

이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한계의 특징은 사고의 부재, 대화에 대한 불신, 공유 가치에 대한 냉소, 자신의 힘에 대한 망상적 과신 등이다. 매끈한 논리와 현란한 수사 그리고 감정을 증폭시키는 키워드의 언어 표현 또한 ‘사이다 같다’라고 한들 빈 강정같은 한계를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언어 표현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뿐만 아니라 살고자 하는 세계의 미래상를 보여 주는 그림이어야 한다. 미래의 가능성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그려 낼 수 없다면 진보도 없다. 누군가의 언어에 무지와 무식만 가득하다면 그 의미를 묻고 의심하고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지가 만든 낡은 언어를 앞세워서는 세상은 결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자기모순과 감상을 시대적 요청으로 유혹하며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족쇄를 채우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말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잘 아는 개와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일갈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듯하다. 덧붙여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표현의 행간을 읽자. 자신의 무지를 모른 채로 마치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 말하는 순간 자신의 무지가 만들어 낸 초라하고 남루한 한계가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