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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1년 09월 17일(금) 05:00
“스님들도 사주나 관상 같은 거 보나요?” 기대 반, 호기심 반 표정으로 그녀가 질문했다. “나는 점쟁이가 아니라서 사주 팔자 볼 줄 몰라요. 정말 미래가 불안하면 본인이 믿는 신에게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지요.” 내가 대답하자, 다소 풀 죽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 종교 없는데요.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무얼 믿고 살아야 하나요?” 다시 돌아온 질문에는 약간의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공시생이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일 년. 그동안 그녀는 무엇에 의지하여 자신을 담금질해야 할까? 몸도 마음도 지치고 불안할 때 힘이 되어 주고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그녀의 밖에 그녀가 믿고 의지할 만한 든든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만 힘이 되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그녀처럼 그 뭔가를 애타게 찾는 이들의 눈에 띌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그 뭔가를 찾아서 믿고 의지한 사람들은 시험 정원에 상관없이 모두 시험에 합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의 존재 의미는 사람들의 믿음을 충족시켜 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녀 앞에 놓여진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건, 게으름을 피우건, 심지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건 상관없이 그녀는 일 년 뒤 시험에 합격한다. 왜? 그녀의 미래는 이미 그렇게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원한 것은 그저 생기는 뜻밖의 횡재가 아니다. 남은 일 년 동안 회의와 불안에 짓눌려 헤매지 않고, 무기력함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초지일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바깥이 아니라면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녀 안의 뭔가는 그녀만의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 밖의 객관적인 것, 즉 시험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의 주관적인 의지가 곧 객관적인 현실로 나타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그녀가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철썩 같이 믿는다고 해도 세상에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결국 그녀가 시험 합격을 위해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질문을 제대로 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면 올바른 대답, 즉 정답도 있을 수 없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는 소원이 크면 클수록 덩달아 커지는 그녀의 불안감, 자신에 대한 회의가 문제이다.

그녀는 이렇게 질문했어야 했다. “제가 일 년 뒤에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데요, 어떻게 하면 그동안 자신감을 키우고 또 잘 유지할 수 있을까요?”

플라톤은 “믿음은 확인된 지식”이라고 했다. 지식 그 자체는 정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식을 확인한다는 것은 지식이 지향하는 실체를 경험이나 과학적 검증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정보에 있지 않고 정보가 지향하는 실체에 있다. 자신감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의 가치관, 정치적 신념, 자신의 성격, 식생활의 기호 같은 것은 자신에 대한 지식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 자신은 글이나 말의 형태로 나의 바깥에 박제화된 정보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자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 생각 그리고 행동이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곧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절대자의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이루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매순간 모습을 달리한다. 한 아이가 성장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하는 실상(實相)이라고 말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에서 ‘진인사’(盡人事)는 나 자신을 올바로 성찰하여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요, ‘대천명’(待天命)은 연기 실상의 이치를 올바로 알아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다. 남은 일 년 동안 그녀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꾸준한 자기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