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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단(壟斷)하는 천장부(賤丈夫)-한재훈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2021년 09월 14일(화) 01:30
‘맹자’(孟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의 시장이란 남는 것과 부족한 것을 교환하는 장이었으며, 관에서는 분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만 했다. 그런데 어떤 천장부(賤丈夫)가 나타나서는 깎아지른 듯한 언덕에 올라가 요모조모 관망한 다음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고, 따라서 그에게 세금을 먹이게 되었다. 상(商)행위에 세금을 먹이게 된 것은 바로 이 천장부로부터 시작되었다.” (‘맹자·공손추하’ 중에서)

‘농단’(壟斷)이라는 말은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기 위해 천장부(賤丈夫)가 찾아 올라간 ‘깎아지른 언덕’을 뜻한다. 그곳은 시장에서 물건이 거래되는 상황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시장은 본래 남는 것을 내놓고 부족한 것을 구하는 일종의 생태(生態) 현장이다.

하지만 그 생태의 현장을 사적인 이익 창출의 검은 시선으로 관망하기에 적합한 곳이 바로 농단이다. 이곳을 점하고 앉아 누군가 애써 생산한 물건을 흔하다는 이유로 헐값에 사들이거나, 누군가 애타게 찾는 물건을 숨겨 두었다가 값이 오른 다음에 내놓는 그를 맹자는 ‘천장부’라고 했다.

그런데 맹자의 ‘농단’ 이야기는 또 다음 이야기와 연결된다. 오래 전 중국에 자숙의(子叔疑)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재상으로서 국정을 담당하는 고위 관료였다. 하지만 임금과 뜻이 맞지 않아서 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높은 관직을 물려주었다. 이러한 그의 행태를 보고 계손(季孫)이라는 사람은 “기이하도다, 자숙의여! …사람 치고 그 누가 부귀를 바라지 않을까? 그런데 그는 혼자서만 부귀를 사사롭게 농단하는구나”라고 비난했다.

자숙의는 임금과 뜻이 맞지 않아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시 말하면, 국정에 관한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이 임금과 맞지 않아서 더 이상 재상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상은 높은 작위(爵位)와 엄청난 녹봉(祿俸)이 보장된 고위직이다. 국정에 관한 소신과 철학을 이유로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숙의는 작위와 녹봉이라는 실물보다 소신과 철학이라는 명예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왜 그랬을까? 아들의 소신과 철학은 그 임금과 맞을 것이라고 판단해서였을까?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은 명예를 취하고, 아들을 통해 실물도 잃지 않는 처세술이 발휘된 것이다. 계손은 이를 “부귀를 사사롭게 농단했다”고 비난하였고, 맹자도 이 생각에 동의했다.

‘맹자’(孟子)에 따르면 천장부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누구나 원하는 것을 독차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명확한 가치 판단에 따른 선택과 포기다.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부귀공명을 포기하거나, 부귀공명을 선택했다면 대의명분은 바라지 말아야 한다.

친일(親日)을 해서 호의호식하며 살았다면 독립(獨立)운동을 한 것처럼 거짓을 꾸며서는 안 된다. 적극적 친일이 아니라 단순 부역만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가산을 내놓고 가족을 희생한 분들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든 혹은 간접적이든 투기를 해서 재산을 불렸다면 공정한 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 기운이 빠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천장부들은 항상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맹자나 우리나 쉽지 않은 일이다. 부귀를 농단한 것만으로도 천한데, 도리어 정의로운 척까지 하는 오늘의 천장부들을 어찌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