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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자가 누리는 만남의 기쁨-최현열 광주온교회 담임목사
2021년 09월 10일(금) 00:30
대학교를 다닐 때 34번 버스를 타고 구 전남도청, 현재는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라 부르는 곳에서 내려 걸어 다녔다. 어느 날 정류장에서 숙소로 가기 위해 그 버스를 기다리는데 처음 보는 두 명의 사람이 다가와 “눈이 맑아 보인다.” “도에 대하여 말씀 좀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걸었다. 보통 때 같으면 몇 마디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그날은 피곤했는지 귀찮다는 듯 시선을 주지도 않고 계속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오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대화의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버스 기다리시나 봐요? 올 버스는 오게 되어 있으니까 말씀 좀 나누시죠.”라고 이어 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올 버스는 오겠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더 반가운 법입니다.”라고 쐐기를 박듯이 말했고 그들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어린 왕자’라는 책에 가슴 설레게 하는 대사가 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야!”라던 사막 여우의 감동적인 멘트. 옛 추억을 떠올려 보면 광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하고 만나는 장소 중에 충장로 우체국 앞이라는 곳이 있다. 어떤 요일이든 낮이나 밤이나 매일매일 사람들은 그곳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그 앞으로 온다. 꽃을 들고 연인을 기다리던 어떤 젊은이와 둘이 수다를 떨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는 소녀들의 미소, 그뿐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약속을 정하고 만남을 이루어 주었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기다림에서 만남으로 이어지는 가슴 따뜻한 추억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한국대사관 소속 김일응 참사관의 말을 믿고 이를 기다리던 아프가니스탄의 현지인 조력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 약속을 기다려야만 했던 이들의 심정 말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송 작전(작전명 미라클)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어 391명을 무사히 구출하여 난민 아닌 특별공로자의 자격으로 우리나라에서 마련한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뿌듯함을 선사해 주었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진정한 첫 발을 내딛는 느낌이라 말들을 한다.

김 참사관과 현지인 조력자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서로 끌어안는 눈물과 감격의 장면이 있다. ‘KOREA’라고 쓴 종이를 들고 찾아다니는 한국군과 직원들 앞에 서 있던 그 많은 군중들은 약속한 이들이 아니므로 나서지 않는다. 다만 한국과 관계가 있고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만이 그 표시를 보고 뛰쳐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올 것이면 오겠지, 하지만 기다리는 이에게는 그 만남이 미치도록 반가운 법이다. 약속한 그때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는 신앙이 구원 받은 자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

예전에는 놀이공원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녀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가끔 있었다. 대부분 아이를 혼자 두고 보호자가 다른 곳, 즉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때 보호자는 아이에게 신신당부한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잠깐 동안이지만 아이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보이지 않는 보호자를 찾아 나서거나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호자로 착각하고 따라가게 된다. 그 자리에 없는 아이 때문에 보호자는 그 아이를 찾아 나서면서 길이 엇갈리게 되고 만다. 잠깐 동안이어도 이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겠는가.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14장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기다리는 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완전한 신뢰와 기다리는 자의 설렘이 있어야 한다. 삶의 두려움은 근심을 낳게 되고 근심은 갈팡질팡하며 방향을 잃어 버리게 만든다. 신앙은 신뢰와 관계에 있다. 더디어도 기다릴 수 있는 까닭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오시리라 했으니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즐거움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