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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1년 09월 06일(월) 05:30
추석이 코앞이다. 근래 추석이 다가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지인들과의 전화 통화에서였다. 이번엔 시댁에 가야 할 것 같다며, 신경 쓸 일이 많다며, 모두들 명절이 지나고 나서 보자고 한다. 백신 덕에 방역 수칙을 잘 따르기만 한다면 지난해부터 보기 힘들었던 가족을 추석에 만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로 살던 가족이 명절을 함께 보낼 생각을 하니 복잡한 심경이 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느 신문사에서 지난해 이맘때 추석을 앞두고 실시했던 설문조사가 생각난다. 문항 중 어른들께 제일 듣고 싶은 말에 대한 응답으로는 ‘안 와도 된다’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결혼한 여성들에게 명절이란 게 결코 즐거운 가족 행사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사실로 인식된 지 오래다.

스트레스로 인해 명절 직후 이혼율이 높다는 말은 번번이 인용되어 이제는 상용구가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명절 때마다 만나는 가족과 친지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신경이 쓰인다는 글을 온라인상에 올리고 있다. 추석을 떠올리며 가족 구성원이 각기 즐거움보다는 편치 않음을 느낀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언택트 명절이 좋은 추억만을 만들진 않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동을 자제하느라 지난 설과 추석에도 가족과 친지 방문 대신 통신과 온라인 매체에 의존해 서로의 안부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안 와도 된당께~’ ‘불효자는 옵니다’ 등 전국 곳곳에 내걸렸던 구수한 사투리와 익살스러운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가족의 정을 직접 느끼며 나누고 공유하기에는 아쉬움과 쓸쓸함이 더 남는 명절이었다.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올 8월. 79세 되신 시어머니께서 여러 불편을 감수하시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오셨다. 2년이 넘도록 못 뵌 어머니와 나는 3주간의 합숙 아닌 합숙 시간을 보냈다. 함께 살지 않았던 가족을 오랜만에 만나니 좀 불편하고 어려운 순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통기간 지난 냉장고 안 식재료들이 사정없이 들통나고, 집안 곳곳에 숨겨둔 정리 정돈 안 된 물품들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리웠던 가족의 만남은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2차 세계대전 중 교편을 잡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5남매를 홀로 키워 내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성장한 형제들 사이에서는 그동안의 좌절과 슬픔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라면 선뜻 하지 못할 대화까지도 오고 갔다. 결국 초등학생 손자 녀석이 할머니에게 맹랑하게 물었다.

“핫무트(어머니 이름), 근데 이번에는 왜 자꾸 죽는 것에 대해 얘기해요?” “죽음은 바로 우리 곁에 있으니까. 그리고 죽음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니까.”

가족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생존을 위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이런 가족들에게 문화적 관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명절은 공동체적 유대감을 결속시키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 가며 가족의 문화도 많이 변화해 온 탓에 이제는 가족이 만나는 명절은 설과 추석뿐이지만, 명절이 갖고 있는 그 내면의 의미와 미덕을 나누는 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위드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모두가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이다. 명절을 앞두고 방역 수칙이 다소 완화되었다고 해도 코로나 확산 고비 시점에서 가족의 대면 모임을 고집하는 것이 이 시국에 맞는 것인지 누군가는 여전히 회의적일 수도 있겠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수고스러움을 함께 나누고 음복과 덕담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이번 명절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온다. 어렵게 모이는 자리인 만큼 대화에서 서로가 느껴 온 갈등의 소재는 피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간 서로가 겪었을 어려움에 위로와 격려를 더해 주는 날이 된다면 우리는 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힘든 때일수록 가족만큼 힘이 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가족은 삶의 중요한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