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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초대석] 우리 역사 ‘아픔’ 주목한 김금숙 그래픽 노블 작가
“영웅보다 소소한 삶이 더 다가와요”
이산가족·위안부·발달장애 뮤지션 등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 작품으로
‘위안부’ 할머니 삶 그린 ‘풀’ 美 하비상 수상
최근 반려동물 다룬 ‘개’, 문화갈등 ‘이방인’ 발표
2021년 08월 23일(월) 20:20
고흥 태생인 김금숙 그래픽 노블 작가는 지난해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그린 장편만화 ‘풀’로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Harvey Awards)을 수상했다.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이산가족과 발달장애 뮤지션 등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작품에 담아왔다. 최근 인간과 더불어 사는 반려동물에 대해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신작 ‘개’와 자전적 문화갈등을 다룬 ‘이방인’을 발표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반려동물도 최소한의 행복 추구해야”=“개에 대한 만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불편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욕을 먹어도 할 건 해야겠다 굉장히 용기를 내서 했어요. 왜냐면 굉장히 터부(taboo)잖아요. 혹시 개를 키우시나요?”

김금숙(50) 그래픽 노블 작가는 최근 신작 ‘개’(마음의 숲 刊)를 펴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1000만 가구 시대에 작가는 왜 ‘인간보다 더 인간을 신뢰한 개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번 작품을 하게 됐고, 독자들에게 어떤 화두(話頭)를 던지고자 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안은 채 멀리 강화도에 자리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신작 ‘개’는 작가의 자전적인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작가는 애견숍 17번 방에서 입양한 강아지 ‘당근이’를 비롯해 작가의 집 앞에 버려진 강아지 ‘감자’, 2년 동안 바닥이 떠 있는 철장에 갇혀 있었던 ‘초코’ 등 3마리의 개를 뜻하지 않게 기르게 된다.

하지만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면서 개들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개들의 그늘진 세계를 정면으로 보게 됐다. 주인의 학대와 무책임으로 인해 짧은 목줄에 묶여 있는 개, 한여름 땡볕에 물 한 모금 없이 도로에 노출돼 있는 개, 장마가 끝나고 나면 하나둘 사라지는 동네 개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개 이야기를 작품화하게 됐다.

작가가 작품 ‘개’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생명존중’과 ‘동물권’이다. 그래서 ‘반려동물에 대한 보호법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지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에 작가의 메시지가 압축돼 있다.

“반려동물도 하나의 생명이니만큼, 데려온 반려동물이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람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인간들에 의해 상처받은 개들의 회복력, 자생력을 강조한다.

“개들도 똑같더라고요. 상처를 받아도 새 주인이 와서 사랑해주고, 좋은 거 먹여주고, 산책시켜주고, 다른 친구들이랑 놀게 하고 시간이 되면 점점 얘가 회복이 되더라고요. 그걸 제가 하나하나 느껴요. 굉장히 큰 감동으로 와 닿아요.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많은 개들의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지면 좋겠다라는 바람에 (작품 ‘개’를) 낸 거죠.(웃음)”

이러한 취지에서 작가는 신작 ‘개’의 수익금 일부를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또한 내년 초에 프랑스에서 작품 ‘개’가 번역돼 출간될 예정이다.

<7>◇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뜻한 눈길=산업화시대 자전적 가족사(아버지의 노래), 제주 4·3항쟁(지슬), 원폭 피해자(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풀), 발달장애 뮤지션(준이 오빠), 여성 독립운동가(시베리아의 딸, 김 알렉산드라), 박수근 화백(나목), 이산가족(기다림)….

그동안 김금숙 작가는 ‘영웅’이 아니라 ‘소소한 삶의 이야기’와 역사와 사회에서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곧 작품화해왔다. 그래서 신작 ‘개’는 앞서 발표된 작가의 작품들의 소재나 주제의식과 비교해 다소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개’가 이전 작품들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작품들은 주제의식이 뚜렷하다. 그런 까닭에 흥미위주의 ‘만화’(漫話)보다 예술성이 뛰어난 작가주의 만화인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라고 달리 표기한다.

작가는 지난해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인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그린 작품 ‘풀’(2017년 보리 刊)로 미국 ‘하비상(Harvey Awards) 2020 BEST 국제 도서부문’과 캐나다 ‘크라우스 에세이상’(Krause Essay Prize)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앞서 2019년에는 미국 ‘뉴욕 타임즈’ 최고의 코믹스와 영국 ‘더 가디언’ 최고 그래픽 노블로 선정된 바 있다.

작가는 2014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 기획전 ‘지지 않는 꽃’에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록을 바탕으로 한 10페이지 분량의 첫 작품 ‘비밀’부터 ‘미자언니’(2016년), ‘풀’(2017년)로 작품을 이어가며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꾸준하게 담아왔다.

김금숙 작가의 작품들 특징은 자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꼼꼼한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출판된 ‘풀’을 건네받은 이옥선 할머니는 책 표지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땋아준 댕기머리를 한 15살 무렵 자신의 모습이 정확하게 묘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풀’은 일본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4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한일관계가 악화된 가운데서도 의식 있는 일본 시민들의 두 차례 ‘크라우딩 펀딩’으로 출판이 이뤄졌다.



최근 독자들의 북 펀딩으로 신작 ‘개’를 펴낸 김금숙 작가.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이산가족, 발달장애 뮤지션 등 역사와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발표해오고 있다.
◇ “출판만화를 살리는 것은 결국 독자들”=1971년 고흥군 점암면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릴적부터 화가를 꿈꿨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스트라스부르그 고등장식 미술학교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했다. 이어 파리로 옮겨가 작품활동을 시작했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게 파리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2003년부터 아르바이트로 한국만화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100여 권의 만화를 번역하면서 이희재 작가의 ‘간판 스타’와 오세영 작가의 ‘부자의 그림일기’ 등에서 만화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렇게 마흔살 넘어 만화에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았다. 2008년에 만화 한권 분량을 완성했고, 2012년 프랑스에서 자전적 이야기인 장편만화 ‘아버지의 노래’를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이듬해 첫 선을 보였다.

작가의 작품들은 컴퓨터나 펜이 아닌 붓을 이용해 흑과 백의 수묵화로 그려내는 그만의 붓터치와 그림체가 남다르다. 수묵의 붓터치와 함께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늦게 오지만 ‘오랜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차분히 간다’고 한다.

작가는 ‘제 9의 예술’ 만화를 살리고, 한국만화와 출판만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다양성’과 ‘독자’를 꼽는다. 작가의 개성적인 그림 스타일, 다양한 이야기가 계속 나와 줘야 하고 독자들이 읽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금숙 작가는 데뷔작 ‘아버지의 노래’(보리 刊)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내 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떠나 보고서야 알았다”고 밝힌다. 그런 까닭에 작가가 1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첫 시도한 ‘내 뿌리 찾기’는 판소리를 배우는 일이었다. 민혜성(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명창과 윤진철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에게 소리를 배웠다. 작가에게 판소리는 창작의 샘물같은 원천(源泉) 역할을 한다.

“해외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어디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냐?’고 저한테 물어봐요. 저는 ‘판소리다, 한국음악이다’라고 얘기를 항상 하죠.”

먹과 붓으로 작업해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를 보여주는 작가.
이달에는 만화예술을 자기의 길로 잡은 작가가 서랍속에 묻어두었던 미발표 데뷔작 ‘이방인’(딸기책방 刊)이 출간됐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준비 중인 작품과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제가 10년 동안 흑백 만화를 그려왔잖아요. 그래서 조금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요. 다음 작품은 컬러로 할 생각이에요. 물론 붓으로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도라는 것은 긴장감과 어떤 흥분, 좋은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작가에게는 무서운 일이거든요. 제 자신이 그 겁이 나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지금 스토리 쓰고, 콘티 짜고 있어요. (미래 작품들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어요. 앞으로 천천히….”

/글·사진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