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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없는 성으로 가는 길-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1년 08월 02일(월) 05:00
현실보다 현실을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없다는 말이 정말 실감 나는 요즘이다. 흔히 현실의 실체에 상응하는 언어를 찾지 못할 때, 수 많은 은유가 생산된다. 특히 사회적 소통 방식으로서의 은유 사용이 그렇다. 그래서 현실은 은유 뒤에 숨고 은유는 현실에 이르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세상과 그 배후의 사태와 힘을 은유하기, 이에 가장 탁월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이 프란츠 카프카(1883-1924)다. 특히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 ‘성’은 작품 전체가 은유다. 유난히 난해한 작품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겨울날, 눈 덮인 작은 마을에 측량기사 K가 찾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의 실체가 드러난다. 측량기사가 마을에 머물려면 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은 뚜렷하게 보이지만 아무리 가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도 성으로 가는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답답한 측량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성이 있는 산에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가, 마치 일부러 그런 듯 구부러져 버렸다. 성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성 안과 마을 사람의 관계도 묘하다. 성 안의 사람들은 성 밖의 사람들을 교묘하게 지배한다. 그러니 외지에서 온 측량기사에게 잠자리를 선뜻 내줄 사람은 없다. 마을에서 소외당하기 때문이다. 성의 관리가 한 가족의 딸에게 보여 준 지나친 관심을 거절했다가 이 가족 모두가 철저하게 단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마을 사람들은 굴종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에 대해서 묻지 않고 사는 것,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긴다. 성의 지시를 법으로 받아들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 본적도 없고, 성 안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다는 태도다. 굴종이 힘 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능력임을 강변하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카프카의 ‘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소수가 통제하고 지배하는 수많은 힘의 공간에 대한 은유가 된다. 그렇다. 공간은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공간을 생산한다. 특정한 공간에서 권력이 생기며, 공간의 이름이 권력과 동일시 되는 현실을 보면 맞는 말이다. 이렇게 현실과 은유가 교차하는 세계에 찾아온 그냥 K라고 불리는 측량기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성의 입구를 찾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성문은 열리지 않는다.

은유로서의 ‘성’은 우리가 무엇으로 읽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아무 준비도 없이 유행 따라 성이라는 권력을 욕망하거나 성 안에 대한 환상으로 굴종의 대열에 자신을 줄 세우는 것에 대해서 작품은 경고한다. “성으로 가는 길은 여럿 있어요. 어떤 때는 그 중 하나가 유행이면 대부분 그리로 가고 또 다른 게 유행이면 모두 그리로 몰리죠.”

유행이란 욕망의 전이이고 투영이다. 이 지점에서 마을과 성의 경계가 모호하고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마을 위의 성이 상징하는 권력의 대리자는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서 성으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차단되고 통제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은유가 아니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현실의 ‘다큐’다. 마을 일을 위해서 온 측량기사를 막아 선 것은 마을 사람들이다. 권력의 주변에 견고한 성벽을 쌓아 올린 자들이 이들이다. 여전히 우리는 섬겨 모실 ‘절대 영주’가 필요한 것인가?

작품 속 권력자 클람을 실제로는 본 사람은 없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서나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클람을 만나려고 측량기사는 온갖 비루한 짓을 다 하지만 헛수고다. 어쩔 수 없이 측량 대신 학교의 잡일을 하다가 마침내 말을 돌보는 임시 허드레 일꾼이 된다.

입구가 없는 성은 권력 욕망을 은유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욕망을 대리하는 영주는 마을 사람들에 기생해서 생존하는 존재다. 그래서 영주를 모시는 곳에는 언제나 뜻이 통하는 크고 작은 현실의 마을들이 생겨나고, 마을들끼리 서로를 적으로 삼는다. 이 때 영주는 꼭 사람이 아닌 가치, 이념, 맹신 등 다양할 수 있다. 이런 영주를 모시는 한, 입구 없는 성 안과 마을의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다시 묻자. 영주가 꼭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