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종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신문·방송이 공정성을 의심받을 때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전공자 등 언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방송 관련 과목을 통해 세계 최초의 공영방송인 영국 BBC에 대해 배우게 된다. 30년의 세월 탓인지 대학 시절 강의 중 기억나는 내용은 거의 없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뇌리에 각인돼 있는 게 있다. ‘방송학개론’에서 방송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강조하면서 예로 든 BBC의 객관적인 보도 태도가 그것이다.
BBC는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을 보도하면서 자국 군인을 ‘국군’이나 ‘우리 군’으로 부르지 않고 ‘아르헨티나군’과 같은 격인 ‘영국군’으로 불렀다. 이로 인해 영국 정부와 보수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지만 BBC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신뢰 있는 보도라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이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속임수 보도’로 위기 몰린 BBC
실제로 중학생 때 국내 TV를 통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시절 우리 언론은 확연히 영국군 편에서 보도했었다.(5·18항쟁 2년 후의 전쟁 뉴스라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하여튼 영국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어른들과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BBC의 태도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상관없는 저 멀리 한국 언론마저도 우방국이라는 이유로 영국 편을 들었었던 점을 감안하면, BBC의 방송 태도에 대해 당시에는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유별나다’란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럼 지난 1982년 포클랜드를 놓고 벌어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 당시 언론 보도를 개괄해 보자. 그해 4월 아르헨티나가 영토를 회복하겠다며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무력 점령하자 영국은 곧바로 전시 체제에 돌입한다. 이에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이 ‘제국의 응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는 등 보수언론은 연일 애국심 고취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BBC는 전쟁 기간 동안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영국 핵잠수함이 아르헨티나 순양함을 격침했을 때도, 영국 구축함이 아르헨티나 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침몰했을 때도, 똑같이 팩트만을 전달했다. 이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침략자와 조국을 똑같은 비중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여기에 “왜 BBC는 우리 군대를 우리 군(our force)이라고 부르지 않고, 영국군(British force)이라고 부르느냐”며 BBC를 향해 ‘반역자’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나중에 공개된 기록에 의하면 대처 총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BBC가 ‘이적 행위’를 한다고 화를 내며 ‘국유화’까지 거론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소장 중인 대처의 메모에 따르면 당시 대처는 핵전쟁 시에나 발동하는 긴급조치를 동원해 BBC를 공영에서 국영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공정성 있는 보도로 국민으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던 BBC지만, 지난 1995년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인터뷰 성사를 위해 ‘왕실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는 거짓말과 이를 믿게 할 조작된 서류 등으로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이 26년 만에 드러났다. 이로 인해 BBC는 수신료 동결·삭감 논의는 물론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강한 쇄신 압박을 받는 등 100년 가까운 역사와 위상이 순식간에 추락하고 있다.
우리 언론도 국민 신뢰 회복 시급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얼마 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의 사장 선임에 시민사회 참여를 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진행돼 온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 추천 과정에서 공정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일 것이다.
요즘엔 공영방송도 상업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과 별로 차별화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대형 신문사들도 정치적 편향성과 상업성을 좇아 한쪽 면만을 보는 ‘유튜브식’ 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정성 대신 좌우 이념을 잣대 삼아 특정 정당만을 편들고, 지역을 나눠 갈등을 부추기며, 입맛에 맞는 대선 후보만을 지지하는 등 언론이 방향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뉴스 대신 유튜브를 보고 사회 문제를 판단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문에 나왔던데” “방송에 보도됐어” 하면 누구나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뉴스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됐다. 매체 변화의 흐름도 있겠지만 언론이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제 언론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공정성을 지키려는 싸움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속임수 보도’로 위기 몰린 BBC
실제로 중학생 때 국내 TV를 통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시절 우리 언론은 확연히 영국군 편에서 보도했었다.(5·18항쟁 2년 후의 전쟁 뉴스라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하여튼 영국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어른들과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BBC의 태도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상관없는 저 멀리 한국 언론마저도 우방국이라는 이유로 영국 편을 들었었던 점을 감안하면, BBC의 방송 태도에 대해 당시에는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유별나다’란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BBC는 전쟁 기간 동안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영국 핵잠수함이 아르헨티나 순양함을 격침했을 때도, 영국 구축함이 아르헨티나 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침몰했을 때도, 똑같이 팩트만을 전달했다. 이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침략자와 조국을 똑같은 비중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여기에 “왜 BBC는 우리 군대를 우리 군(our force)이라고 부르지 않고, 영국군(British force)이라고 부르느냐”며 BBC를 향해 ‘반역자’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나중에 공개된 기록에 의하면 대처 총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BBC가 ‘이적 행위’를 한다고 화를 내며 ‘국유화’까지 거론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소장 중인 대처의 메모에 따르면 당시 대처는 핵전쟁 시에나 발동하는 긴급조치를 동원해 BBC를 공영에서 국영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공정성 있는 보도로 국민으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던 BBC지만, 지난 1995년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인터뷰 성사를 위해 ‘왕실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는 거짓말과 이를 믿게 할 조작된 서류 등으로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이 26년 만에 드러났다. 이로 인해 BBC는 수신료 동결·삭감 논의는 물론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강한 쇄신 압박을 받는 등 100년 가까운 역사와 위상이 순식간에 추락하고 있다.
우리 언론도 국민 신뢰 회복 시급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얼마 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의 사장 선임에 시민사회 참여를 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진행돼 온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 추천 과정에서 공정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일 것이다.
요즘엔 공영방송도 상업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과 별로 차별화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대형 신문사들도 정치적 편향성과 상업성을 좇아 한쪽 면만을 보는 ‘유튜브식’ 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정성 대신 좌우 이념을 잣대 삼아 특정 정당만을 편들고, 지역을 나눠 갈등을 부추기며, 입맛에 맞는 대선 후보만을 지지하는 등 언론이 방향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뉴스 대신 유튜브를 보고 사회 문제를 판단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문에 나왔던데” “방송에 보도됐어” 하면 누구나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뉴스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됐다. 매체 변화의 흐름도 있겠지만 언론이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제 언론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공정성을 지키려는 싸움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