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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마한의 분주토기와 유공토기
다른 지역에 드물었던 마한의 특별한 토기들
2020년 09월 02일(수) 00:00
고창 출토 분주토기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지난 글 <16>에서는 마한지역에서 분묘제사가 성행하였는데 이는 효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조상의 무덤에서 제사가 이루어졌던 증거물로는 무덤 주변 도랑에서 출토된 많은 제사용 토기를 제시하였는데 이번 글에서는 무덤을 장식하였던 분주토기와 영혼의 출입을 위해 부장하였던 유공토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나주 신촌리 9호분 분주토기 출토상황 (국립문화재연구소)


◇분주토기(墳周土器)

분주토기는 마한 분구묘 상부의 평탄면이나 하부 둘레에 배치되어 무덤을 장식하였던 토기이다. 1917년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처음 출토되었을 때 그 용도를 몰랐기 때문에 일본의 하니와(埴輪)를 닮았다고 해서 원통형식륜(圓筒形埴輪)이라 불렀다.

그 후 1993년에 광주 월계동 장고분의 주구에서 200여개체가 출토되고, 이어 광주 명화동 장고분과 나주 신촌리 9호분의 분구에서 열을 이루고 출토됨으로써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장식하였던 하니와와 동일한 기능을 가진 것임이 확인되었다.

국내에서는 40여기의 호남지역 마한 분구묘를 중심으로 1000개체가 넘게 발굴되었다.



◇분주토기의 기원

분주토기는 일본 하니와와 상통하기 때문에 일본의 장례에 참석하였던 마한인이 도입하였다고 보거나 백제 근초고왕의 요청에 따라 왜 세력이 진출함에 따라 들어온 것으로 보는 등 일본의 하니와를 기원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그러나 분주토기는 3세기말에 충남 아산지역의 마한 무덤에서 사용되었던 원통형 특수토기에서 발전한 것이다. 목관 위에서 출토된 이 토기에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술을 공헌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술 공헌은 목관 위에 흙을 덮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는데 4세기초부터 전북 서부지역을 거쳐 영산강유역에서 6세기 중엽까지 성행하면서 완성된 분구를 장식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일본의 하니와는 4세기초에 시작되어 우리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다가 6세기 중엽 이후 전방후원분과 함께 쇠퇴하였다. 그러나 6세기 후엽에 일부 지역에서 갑자기 이질적인 하니와가 나타나는데 이는 나주 복암리 출토품과 상통하는 것으로서 530년경 백제의 병합을 피해 일본으로 이주한 이 지역 마한 세력자들에 의해 파급된 것이다.



◇분주토기의 성행 배경

아산지역의 원통형 특수토기는 한국 분주토기와 일본 하니와의 기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원형은 원통형 술잔인 중국의 고()에 있다. 중국에서도 조상의 영혼을 위해 술을 공헌하는 일은 매주 중요한 일이었는데 후한 광무제 무덤에서 거행되었던 새해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술을 공헌하는 일이었을 정도였다.

‘주례(周禮)’에는 사주(事酒), 석주(昔酒), 청주(淸酒) 세가지 술이 나오며, ‘정사농(鄭司農)’에는 사주는 겨울에 만들어 봄에 마시는 새 술이고, 석주는 약간 숙성된 술이며, 청주는 오래 숙성된 술로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에서 가장 좋은 술을 공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에서 술과 관련된 용기는 음주기(飮酒器)와 성주기(盛酒器)로 구분된다. 음주기는 작(爵), 가 등 술잔이고, 성주기는 존(尊), 유 등 술통이다.

시대나 위계에 따라, 재료나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고와 존은 각각 술잔과 술통으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조합이다. 아산지역의 원통형 특수토기는 중국의 고에 해당하며, 전북 군산 출토 분주토기 가운데에는 존에 해당하는 것이 섞여 있다.



◇유공토기(有孔土器)>

영산강유역 출토 유공토기
유공토기는 몸통 중간에 한 개의 구멍이 뚫린 토기로서 영산강유역의 대형 옹관묘에서 흔히 출토되어 옹관묘와 함께 오래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지만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몸통에 뚫린 구멍은 다른 토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므로 원래 주둥이가 연결되어 있었다고 보거나 구멍에 빨대와 같은 것을 끼워 그 안에 담긴 액체를 빨아먹는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영산강유역 출토 유공토기
그러나 그와같이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주전자처럼 주둥이가 부착되었던 흔적이 없고, 구멍의 위치가 바닥에서 가까워서 소량의 액체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공토기는 마한에서 제사가 성행하는 시기에 등장하기 때문에 조상의 영혼이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토기로 추정된다. 옹관 저부에 영혼의 출입을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과도 상통한다.





◇유공토기의 기원

유공토기는 완성된 상태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 기원이 따로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중국의 오련관(五聯罐)이 주목된다. 오련관은 항아리에 4개의 작은 단지가 부착된 것인데 이는 오곡(五穀)을 의미하며 조상들이 풍족한 영생을 누리라는 염원에서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다.

중국 동오시대 오련관
오련관은 구멍을 가진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조상의 영혼이 출입하는 상징적 장치이며 이로 인해 혼병(魂甁)이라고도 불렸다. 오련관은 동오(東吳), 진(晉) 시기를 중심으로 중국 강남지역에서 성행하면서 주변으로도 파급되었다.

일반적인 마한의 유공토기는 형태가 단순하지만 고창 봉덕리 출토품은 중국 오련관과 같은 형태이며 받침토기도 가지고 있다. 마한의 유공토기는 오련관이 단순화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산 출토 원통형 특수토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분주토기와 유공토기는 모두 마한의 특징적인 토기이며 무덤을 장식하거나 영혼의 안식을 위한 것이다. 마한의 분묘제사는 조상을 추모하는 동시에 무덤을 방치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서 효에 기반한 혈연공동체 의식 속에서 성행하였다.

중국 운남성 기낙족(基諾族)은 죽은 사람을 묻은 다음 그 위에 간단한 건물을 세우고 매일 3회씩 음식을 바치다가 1~2년이 지나 해체하는데 이는 토지를 기반으로 혈연공동체가 유지되었던 고대의 분묘제사와 상통하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청동제 고
산업화 이전까지 농경사회가 이어졌던 우리나라에서도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집안 사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분묘제사는 이어져오고 있는데 그 기원이 마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한연구원장·前전남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