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후보 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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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을 후보 뽑기
2017년 04월 26일(수) 00:00
채 희 종 사회2부장
한껏 고조됐던 대통령선거 분위기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가라앉고 있다. 호남인은 정권 교체를 확신한 탓인지, 양손에 떡을 쥔 탓인지 오히려 선거 초반보다 미지근해진 듯한 모습이다.

예전에 비해 대선 스트레스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과 중, 최근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그림책 한 권을 만났다. 프랑스 작가가 쓴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라는 44쪽짜리 그림책이다. 나치 시대 독일 얘기인데 우리의 탄핵 정국에 이은 장미 대선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1933년 3월, 다섯 살 꼬마 루디는 우연히 아빠와 엄마의 말다툼을 듣게 된다. “잘 생각해 봐, 히틀러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니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히틀러를 뽑아야 해. 그가 독일 국민 모두에게 일자리를 줄 거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후보를 찍을 거예요. 당신한테 나처럼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나한테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이 그림책은 선거 직전 아빠가 히틀러만이 대안이라며 엄마를 설득하는 장면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얼마 뒤 치러진 선거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다. 국민의 희망과 달리 히틀러는 정당을 해산하고 독재 체제를 구축한 뒤, 유럽 전역의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다.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와중에 아빠는 군대에 끌려가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동생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치 시대가 막을 내린 어느 날이었다. 열두 살이 된 루디는 따지듯 묻는다.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

우리는 히틀러를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히틀러는 반란이나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다. 가장 합리적인 제도라는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선거를 거쳐 뽑았음에도 인류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다.

우리의 지난 18대 대선을 보자. 당시 박근혜 후보는 역대 최고인 51.5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는 직선제 전환 이후 유일한 과반수 득표이며, 어쩌면 앞으로 깨지지 않을 기록일지도 모른다.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한 통치 기반을 부여했지만, 대통령이 된 그는 최순실 국정 농단의 공범으로 탄핵이 됐다.

다시 나치 시대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왜 히틀러를 선택했을까. 히틀러는 자신이 당시 실업에 대한 국민의 공포와 경제 불안을 해소할 적임자임을 내세웠다. 독일인들은 장밋빛 공약에 혹해 후보 검증에 소홀했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도 중산층 재건과 일자리 늘리기 그리고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며 어려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 역시 그의 자질과 인성에 대한 검증은 소홀히 했다.

그렇다면 어떤 후보를 뽑아야 할까. 전문가와 각종 언론의 조언은 대동소이하다. 공약을 꼼꼼히 챙겨보고,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청렴성 등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 보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발전 공약과 지역 균형발전 공약도 챙겨 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공약과 정책을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선 준비 기간이 짧았던 탓에 후보들의 공약이 구체화되지 않고 유사하다. 특히 중소기업, 노인, 청년, 농어민, 군인, 노동자 등 만나는 계층 모두에게 지원을 늘리겠다는 사탕발림식 공약이 많다. 재원 마련 방안도 현실성이 없고, 설사 공약을 했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복지 공약을 포기했듯이 반드시 지킨다는 보장도 없다.

야권 중심의 양강 후보 체제에서 호남의 선택은 달라야 한다. 뽑아서 후회하지 않을 후보를 택해야 한다.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후보보다는 호남의 낙후와 홀대 실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후보가 더 낫다. 호남의 표심을 얻기 위한 진실성 있는 태도를 지닌 후보, 그에 걸맞은 실천력을 가진 후보여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면, 국민과의 소통 능력과 기본적인 품성이 가장 중요한 체크리스트일 수도 있다.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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