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몸비 혁명
![]() 홍 행 기 사회부장 |
전 세계적으로 ‘좀비’(zombie) 열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레지던트 이블’ ‘워킹데드’를 비롯해 외국에서 제작된 각종 드라마나 영화 가운데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좀비’가 작가 또는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있어서 또 다른 ‘영감의 원천(源泉)’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원래의 좀비는 지금 현대인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는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좀비는 서인도제도의 아이티 공화국에서 17세기 말 형성된 민간종교 ‘부두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주술’이 특징인 부두교는 흑인 노예와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흘러들어 온 정령(精靈) 신앙과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비밀 종교’다. 좀비는 바로 이 부두교에서 ‘지역 공동체에 대한 금기를 범한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다.
부두교에서는 복어나 두꺼비 등에서 뽑아 낸 독을 죄인에게 먹여 기절 시킨 뒤 땅에 묻는다. 이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땅에서 파낸 뒤 해독제를 먹여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되살아난 사람은 말이 없어지고 의지도 사라진 채 시체처럼 어슬렁거리게 되는데 이처럼 초자연적인 힘으로 되살아난 시체, 또는 되살아나는 영적 능력이 바로 좀비다.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좀비는 무보수 노예로 노역에 동원되곤 했다. 주로 낮에는 무덤 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일을 하는데,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볼 수 있어 불빛이 필요 없었다고 한다. 요즘 각종 대중매체에서 좀비가 주요 콘텐츠로 인기를 끄는 것은 이처럼 주술적인 요소와 함께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좀비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비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자신의 의지 없이 시체처럼 마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느라 외부 세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좀비의 범위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세로 떠오르는 ‘스몸비’(smombie)가 대표적이다. 스몸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걷는 사람들이 마치 ‘좀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마트(Smart)폰과 좀비(Zombie)의 합성어인 셈이다.
스몸비가 많아지면서 ‘어깨빵’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마주 오는 사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깨로 치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이 어깨빵을 ‘코리안 범프’(Korean Bump)라고 부른다. 한국인(Korean)과 ‘부딪친다’는 의미의 범프(bump)를 합성한 것이다. 몇몇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25%인 1300만 명 정도가 스몸비로 추정된다고 한다.
좀비가 연상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이 스몸비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스몸비였기 때문이다. 스몸비들은 지난 몇 개월 새 스마트폰을 들고 SNS를 공유했고, 엄지손가락으로 대통령 탄핵의 원동력을 만들어 냈으며,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부패한 권력을 끝내 무너뜨렸다. 이쯤 되면 ‘자랑스러운 스몸비’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제19대 대통령선거가 48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스몸비들은 또다시 광장으로 향하거나 촛불을 들고 있진 않지만 SNS를 통해 제2의 혁명을 시작하고 있다. 지지 후보는 서로 다르지만,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이 진짜 주인으로 자리 잡는 새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스몸비 혁명’의 목표다.
지난 2002년 서울월드컵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붉은 악마’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바탕으로 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국제사회에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지금 충장로 우체국 앞,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스마트폰 화면에 푹 빠진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오는 5월 9일 ‘SNS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 그리고 ‘스몸비의 다이내믹한 파워’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redplane@kwangju.co.kr
부두교에서는 복어나 두꺼비 등에서 뽑아 낸 독을 죄인에게 먹여 기절 시킨 뒤 땅에 묻는다. 이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땅에서 파낸 뒤 해독제를 먹여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되살아난 사람은 말이 없어지고 의지도 사라진 채 시체처럼 어슬렁거리게 되는데 이처럼 초자연적인 힘으로 되살아난 시체, 또는 되살아나는 영적 능력이 바로 좀비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비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자신의 의지 없이 시체처럼 마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느라 외부 세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좀비의 범위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세로 떠오르는 ‘스몸비’(smombie)가 대표적이다. 스몸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걷는 사람들이 마치 ‘좀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마트(Smart)폰과 좀비(Zombie)의 합성어인 셈이다.
스몸비가 많아지면서 ‘어깨빵’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마주 오는 사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깨로 치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이 어깨빵을 ‘코리안 범프’(Korean Bump)라고 부른다. 한국인(Korean)과 ‘부딪친다’는 의미의 범프(bump)를 합성한 것이다. 몇몇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25%인 1300만 명 정도가 스몸비로 추정된다고 한다.
좀비가 연상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이 스몸비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스몸비였기 때문이다. 스몸비들은 지난 몇 개월 새 스마트폰을 들고 SNS를 공유했고, 엄지손가락으로 대통령 탄핵의 원동력을 만들어 냈으며,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부패한 권력을 끝내 무너뜨렸다. 이쯤 되면 ‘자랑스러운 스몸비’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제19대 대통령선거가 48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스몸비들은 또다시 광장으로 향하거나 촛불을 들고 있진 않지만 SNS를 통해 제2의 혁명을 시작하고 있다. 지지 후보는 서로 다르지만,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이 진짜 주인으로 자리 잡는 새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스몸비 혁명’의 목표다.
지난 2002년 서울월드컵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붉은 악마’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바탕으로 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국제사회에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지금 충장로 우체국 앞,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스마트폰 화면에 푹 빠진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오는 5월 9일 ‘SNS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 그리고 ‘스몸비의 다이내믹한 파워’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