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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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대출
홍 행 기
경제부장
2014년 11월 05일(수) 00:00
요즘 시중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려면 생각보다 많은 이자에 놀라게 된다. 물론 일부 업체의 이야기고,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1000만 원을 빌리면 한 달 이자로만 50만 원을 내야하는 곳도 드물지 않다. 1년에 600만 원의 이자를 물어야 하니 이자율만 연 60%인 셈이다. 물론 원금은 따로 갚아야 한다.

대부업체라지만, 국가에서 연 25% 이상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이자제한법은 안중에도 없다. 돈이 급한 서민들로서는 “이자가 너무 비싸다”고 시비를 걸기보다는 “그나마 돈을 융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일부 대부업체들의 이 같은 행태를 이르는 말이 바로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다. 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뒤 높은 이자를 물려 채무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의미에서다. 대부업체로서는 최악의 경우 담보로 제공받은 자산을 팔아 빚을 회수하면 된다는 얄팍한 계산 때문에 약탈적 대출에 나서게 된다.

담보 없이 신용만으로 이뤄지는 대출도 ‘약탈적’이긴 마찬가지다. 업체들은 어쨌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원금과 이자만 받아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줄 때는 손쉬운 조건을 제시하며 입속의 혀처럼 굴다가도 대출금을 회수할 때는 혹독하게 재촉하는 게 약탈적 대출의 특징이다. 친절한 대출은 빚더미를 쌓게 하고 부채의 덫에 걸리게 하는 고리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약탈적 대출이 일부 대부업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리대부의 폐해를 막기 위해선 1금융권이라 불리는 시중은행이 나서줘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들도 제 역할을 수행하기는커녕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날씨 좋을 때 우산 빌려 줬다가 막상 비가 오면 우산 뺏는’ 것이 은행이긴 하지만, 최근 이들이 예금과 대출 금리를 정하는 걸 보면 ‘과연 이래도 좋은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A은행은 지난 9월 ‘만기 10년 이상 주택담보 대출’ 기준금리를 2.78%로 내렸다. 이는 지난 6월 적용됐던 기준금리 3.16%에 비해 0.38%P가 내린 것이다. 지난 8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25%P 인하된 데 따른 조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변화는 시중은행이 정하는 자체 기준금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은행은 지난 6월 0.15%였던 대출 가산금리를 9월에는 0.85%로 올렸다.

덕분에 A은행이 고객에게 적용하는 최종 대출금리(신용등급 평균)는 지난 6월 3.31%에서 9월 3.63%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전보다 오히려 0.32%P가 더 올랐다.

다른 은행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최종 대출금리를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전보다 올리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기준금리가 내린 만큼 대출금리도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고객들만 우습게 된 것이다.

은행들은 게다가 고객이 맡기는 예금에 대해서는 우대금리를 크게 깎는 방법으로 수신금리를 내림으로써 고객에게 내줘야 할 이자부담을 줄이고 있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는 높이고 우대금리는 낮추는 방법으로 고객의 호주머니를 털어 슬그머니 제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의 이 같은 행태는 최근 서민들의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무너지려는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를 완화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최근 폭증하고 있지만, 이 대출금 가운데 절반 이상은 주택구입이 아닌 생계자금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려 주택을 담보로 빚을 얻어야만 하는 서민들이 돈은 더 쉽게, 더 많이 빌릴 수 있게 됐다지만 이자는 과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이 내야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주택대출 규제를 풀어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려는 정부와, 수익에만 목을 매는 이기적인 금융기관이 합작하면서 힘들어진 것은 결국 대부분의 돈 없는 국민뿐이다. 국민을 약탈의 대상으로 보는 정부 그리고 금융기관의 반성이 필요하다.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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