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전당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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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전당을 부탁해
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4년 08월 20일(수) 00:00
얼마 전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런던의 바비칸 아트센터는 명불허전이었다. 상주단체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용홀과 공연장·미술관·영화관 등 10여 개의 문화시설에서는 2800여 개의 공연과 프로그램이 열려 매년 전 세계에서 200여만 명이 다녀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바비칸 지역을 문화로 되살려 내기 위해 1982년 문을 연 바비칸센터는 예술가들이라면 한번쯤 서 보고 싶은 꿈의 무대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바비칸 센터에도 남모르는 고민이 있다. 다름 아닌 ‘빠듯한 살림’이다. 취재차 만난 루이스 제프리스 바비칸센터 예술감독은 “한 해 평균 8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는 게 힘들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바비칸센터의 재정자립도는 34% 정도. 전체 예산의 43%(2012년 기준)를 런던시로부터 받고, 런던시 산하기관인 ‘시티 브리지 트러스트’와 기업 후원 27%, 자체 티켓 판매수익 24%, 영국예술위원회 4% 지원으로 근근이 꾸려 나가는 실정이다.

특히 바비칸 센터의 2013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해였다. 그동안 예산의 55%를 지원해 온 런던시가 2012 런던올림픽의 적자를 메운다는 명목으로 무려 11%를 줄였기 때문이다.

예산 삭감의 피해는 고스란히 런더너(Londoner)들의 몫이 됐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교육 프로그램과 실험성 강한 콘텐츠를 대폭 줄이는 바람에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바비칸센터를 ‘동네 사랑방’처럼 자주 드나들었던 인근 주민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난 2009년 파리 시민들 역시 퐁피두센터 때문에 우울한 연말을 보내야 했다. 당시 재정난을 이유로 퐁피두센터 인원과 예산의 70%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려는 사르코지 정부에 맞서 퐁피두 센터가 성탄절을 앞두고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콧대 높은’ 파리지앵들이 퐁피두센터의 파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지원이 줄어들면 입장료가 인상되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콘텐츠들이 퐁피두센터를 채울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파리지앵의 총파업 덕분인지 현재 퐁피두 센터는 정부로부터 운영예산(1500억 원)의 70%를 지원받고 있다.

10여 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기자의 사무실(광주시 동구 금남로 무등빌딩)에서 내려다본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하 전당)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는 바비칸센터나 퐁피두센터의 ‘비밀’을 알아버려서인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세계적인 복합문화시설들도 ‘홀로서기’가 힘든 판에 도시 경쟁력이나 인프라에서 열세인 전당의 미래는 너무 불투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완공을 불과 2개월 앞두고 운영 주체나 콘텐츠 등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보니 자칫 팔 상품은 없는데 문만 먼저 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운영 주체를 정부기구로 할 것인지 아니면 특수법인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전당의 미래가 달라질 텐데….

전당은 지난 2002년 노무현정부가 전남도청 이전으로 쇠락한 광주 구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3조 5000억 원을 들여 추진한 국내 최대의 복합문화시설이자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꽃이다. 서울에 비해 시장성이 한참 떨어지는 광주에 ‘빅 프로젝트’를 내려보낸 건 문화발전소로 광주를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운영의 효율성 등을 내세워 재정자립도가 76.8%에 달하는 서울 예술의전당(정부지원 30%)처럼 전당을 특수법인화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당의 개관 초기 재정자립도가 2.5%, 2017년 7%(문광부 자료)에 불과한 상황에서 ‘독자 생존’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전당은 상업성과는 거리가 다소 먼 실험적인 예술이나 콘텐츠가 상당수다. 아시아문화의 아카이브가 될 전당 내 문화정보원과 민주평화교류원은 연구 및 전시의 기능이 강한 시설이다. 만약 정부의 주장대로 전당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면 법인에 운영을 맡기되 국립기관 수준에 가까운 재정 비율을 담보해 주면 된다. 전당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저예산 콘텐츠나 영리 목적의 ‘상품’들이 내걸리는 건 국책 프로젝트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퐁피두센터의 파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눈앞의 이익을 챙기려다 문화도시 파리의 자긍심을 떨어뜨릴 뻔했던 어리석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정부의 재정지원을 의무화한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의원의 ‘문화도시 조성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수개월째 낮잠을 자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오는 9월 국회에서 지역사회의 염원이 담긴 이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공의 가치다. 전당은 광주에 짓는 또 하나의 예술의 전당이 아니다. 전당은 아시아의 문화 허브다.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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