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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한국인 교황을 기대하며
2014년 01월 17일(금) 00:00
포항제철에 들어가기 위해 철학과를 지원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인간의 근본을 연구하는 철학(哲學)이 아니라 쇠를 다루는 철학(鐵學)으로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무슨 병을 치료했나요? 초등학생 사이에 이런 엉뚱한 질문이 나오는 것도 의사(義士)와 의사(醫師)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한자 문맹(文盲)에서 오는 웃지 못 할 얘기다.

이런 판은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이라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가령 ‘추기경’ 같은 단어를 한자로 쓸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과거 자유당 시절 어느 유명한 정치인마저도 추기경(樞機卿)을 ‘구기경’으로 발음해 웃음거리가 됐다니 말이다.

추기경에서의 ‘경’(卿)은 높은 벼슬에 대한 경칭이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 하지만 ‘추’(樞)라는 한자는 상당히 어렵다. 원래는 문짝이 회전할 때의 굴대를 받는 구멍을 말하는데 그곳은 문짝의 개폐(開閉)에 중요한 곳이므로 ‘중요’(重要)의 뜻이 됐다고 한다.

중추신경이라 할 때의 ‘중추’(中樞)를 보면 이의 쓰임새를 알 수 있다.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말한다. 고려 시대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이나 숙위(宿衛) 등 중요한 일을 맡아보는 기관의 이름도 추밀원(樞密院)이었다.

추기경에서의 ‘기’(機)는 기틀이며 ‘추기’(樞機)는 중추가 되는 기관(機關)을 말한다. 추기경(cardinal)을 뜻하는 라틴어인 카르디날리스(cardinalis)도 원래는 문짝에 다는 돌쩌귀·지도리·경첩을 말했는데 나중에 ‘주요 인사’ 내지는 ‘우두머리’를 가리키게 되었다 한다.

추기경으로 임명이 되면 순교를 뜻하는 붉은색 수단(soutane)을 입게 된다. 추기경을 다른 말로 홍의교주(紅衣敎主)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누리는 고위 성직자다.

이번 주는 참으로 유쾌한 소식으로 한 주가 시작되었다. 신문들은 “한국에 새로운 축복의 빛이 내려왔다.”고 썼다. 바티칸서 날아온 ‘일요일 밤의 선물’, 염수정(71) 서울대교구장이 한국의 새 추기경이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에 염 대주교를 포함해 19명의 새 추기경을 지명했다. 1969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2006년 정진석 추기경에 이은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이다. 염 추기경은 80세 미만의 추기경이라 정진석(83) 추기경과는 달리 교황 선출권도 갖는다.

염 추기경은 옹기장이 신앙의 순교자 집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염 추기경의 두 동생도 사제다.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3형제 신부를 낸 집안인 셈이다. 염 추기경의 영세명은 ‘안드레아’.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본명(세례명)이 같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나온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들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불신과 오해 속에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염 추기경은 임명 직후 “나만 옳다고 쌓아 올리는 바벨탑을 무너뜨리자.”며 화합과 통합을 강조했다.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을 비롯해서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우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추기경이 지적하는 바벨탑일 것이다. 우리의 가슴에서, 우리의 공동체에서 무너뜨려야 할 바벨탑.

염 추기경은 또 “눈에 백태가 끼면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다.”는 구상(1919∼2004) 시인의 시(詩)를 인용하면서 아집과 욕심을 버려야한다고 했다. 착한 목자(牧者)가 해야 할 첫 직무는 뿔뿔이 흩어진 양들을 하나로 모아 화해하고 일치하고 공존하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분열과 갈등을 넘어선 화해와 공존이다.

목포 출신으로 현재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67) 대주교가 이번에 추기경이 되지 못하고 그저 물망에 오른 데 그친 건 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새 추기경의 탄생은 500만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쁘게 받아들일 일이다. 이제 복수 추기경 시대가 열렸다. 언젠가는 한국인 교황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모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