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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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송 기 동
체육부장
2013년 09월 04일(수) 00:00
# 장면 1: 지난 1일 광주 서석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광주일보 주최 제3회 무등기 광주·전남 사회인야구대회 천황리그 유한킴벌리와 로즈스나이퍼의 16강 경기.

유한킴벌리 4번 타자인 최형필(43·자영업) 선수는 7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러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경기는 유한킴벌리의 5-0 승.

그는 “경기 전에 동료에게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 야구대표팀 경기를 본 후 본격적으로 사회인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수의사인 박준규(28)씨는 인왕리그 버스터즈의 투수다. 같은 날 4·19 야구단과 경기에서 호투, 팀의 9-6 승리를 이끌며 승리투수가 됐다. 8년여 전부터 주말마다 힘차게 야구공을 뿌리고 있다.

# 장면 2: 지난 2012년 초 뇌 과학자이자 야구팬인 정재승 KAIST 교수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58명의 야구 마니아들이 이색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백인천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인 연구 주제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왜 4할 타자는 사라졌는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원년에 백인천 MBC 청룡감독 겸 선수가 0.412로 4할을 넘긴 이래 지금까지 ‘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가 하는 지적 호기심에 따른 연구였다. 이들은 KBO(한국야구위원회)의 30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과학적 통계분석을 시도했다. 그리고 4개월 후 집단적인 지성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놓았다.

야구가 일상생활에 확산되고 있다. 프로야구가 아닌 사회인야구 이야기이다.

사회인 야구팀은 2012년 기준 광주 300여개, 전남 60여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만36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사회인야구 동호인 수는 대략 2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나이 대도 20∼50대로 폭넓고, 직업도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들 역시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리그를 나눠 경기를 펼친다.

직장인 팀들만의 직장인 야구리그도 있다. 이들은 주말에 시간을 쪼개 여가생활로 야구를 하며 직장 선·후배와 화합을 도모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특히 야구 동호인들은 선수 출신에게 레슨을 받으며, 타격과 스윙 폼을 교정할 정도로 기량연마에 구슬땀을 흘리기도 한다. 열정만큼은 프로선수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이들은 말한다. “야구는 마약이다. 할수록 중독된다”고.

1982년 백인천은 72경기에 출전해 250타수 103안타(홈런 19)를 때리며 시즌 타율 4할1푼2리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작성한다. 이후 한국프로야구 32년 역사에서 장효조(삼성·1987년 3할8푼7리)와 이종범(해태·1994년 3할9푼3리)만이 4할대에 육박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테드 윌리엄스(1941년 0.406) 이후 4할 타자 맥이 끊겼고, 일본 야구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4할 타자 미스터리’ 연구를 시도한 야구 마니아들의 결론은 뭘까? 이들은 “30년간의 각종 야구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야구) 시스템이 안정화돼 4할 타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고 밝혔다.

100년간의 미국 프로야구 결과를 분석한 미국 진화생물학자 스티브 제이 굴드의 연구와 마찬가지 결론이다. 그는 “야구라는 생태계는 시간이 갈수록 최고와 최저 사이의 폭이 줄어들며 안정화된다. 거듭된 경쟁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수준 상향 평준화가 4할 타자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폈다.

야구를 몸으로 직접 뛰며 하는 동호인이나 데이터를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마니아 모두 야구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러나 광주·전남 아마 야구인들이 야구를 즐기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주말에 사용할 수 있는 운동장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동호인들은 흙먼지 날리는 하천변 구장일지라도 경기를 맘껏 펼 수 있는 경기장이 많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무등기 광주·전남 사회인야구가 지난 1일 개막경기를 시작으로 11월까지 2개월여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올해로 3회째인 이번 대회는 48개 팀이 참여해 토너먼트 대결을 펼친다. 팀의 명예를 건 아마 야구인들의 열전을 기대한다.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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