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는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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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는 달리고 싶다
최 재 호
경제부장
2013년 08월 14일(수) 00:00
자동차업계는 매년 이맘때면 노사간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을 벌이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장기간 ‘하투(夏鬪)’에 들어간다.

자동차업계 노조가 하투를 통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는 사이 완성차업계 안팎에서는 낮아지는 생산성에 따라 바짝 긴장하게 된다. 태업과 파업에 따라 직원 1인당 생산효율과 시간당 생산대수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월간 수입차 판매량이 지난 5월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지난 7월 한 달간 팔린 수입차가 1만4953대(등록대수 기준)로 전년 동기대비 38.9%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8만9440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보다 22.5%가 늘었다.

올 상반기 내수시장에서 수입차 판매가 20% 이상 증가한 반면 국산차는 도리어 3% 가까이 떨어졌다. 글로벌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현대·기아차가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가 중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주가 상승률도 가장 부진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시가 총액 합계는 올해 1월 1일 71조334억 원에서 지난 9일 종가 기준 73조1130억 원으로 2.93%(2조796억 원) 증가에 그쳤다.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 중 최하위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노조의 일방적 요구가 계속된다면 생산기지 이전, 물량 축소 등의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기아차는 최근 ‘5차 임금교섭 5차 본교섭’을 가졌다. 여름 휴가 전까지 9차례의 교섭기간 동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노사는 이날도 노조가 마련한 일괄제시(기본급·성과급 등에 대한 요구)안에 사측의 답변이 없자 협상은 10분 만에 결렬됐고, 사실상 파업 수순에 들어갔다. 노조는 1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파업 등으로 4개월여 지연됐다가 최근 돌파구를 마련한 광주공장의 62만대 증산 프로젝트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 광주공장은 지난 6월 증산프로젝트의 핵심공장인 제2공장의 증산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46.1UPH에서 58UPH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419명을 새로 채용해 2공장에 투입하는 등 본격적인 증산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난 7월말까지 생산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1%(6122대) 감소한 28만284대에 그쳤다.

더욱 시급한 문제는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생산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형 화물차인 봉고트럭의 증산문제다. 봉고트럭은 현재 주문 대기 물량만 2만대(내수 9000대·수출 1만1000대)로 계약 뒤 차를 인도받는 데까지 평균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이에 따른 계약 해지율만 30%에 이른다.

기아차는 3년 전부터 증산계획을 세웠지만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62만대 증산계획에서 1·2공장 증산은 광주공장의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필수이고, 3공장의 봉고트력 증산은 대기물량 해소라는 다급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증산에 따른 노사협의는 3년 넘게 100차례나 했지만 여전히 표류 중이다. 회사는 증산에 따른 복지 등 적극 투자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노조는 철저한 ‘물량 검증과 투자 요구’만을 주장하며 밀려드는 물량을 외면하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한국 내 생산시설(GM 대우)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인건비 급증과 전투적 노조로 인해 불안한 한국 생산비중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GM은 또 고사 직전에 있던 스페인공장에 8000만 유로(약 12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스페인공장 노조가 향후 수년간 임금동결을 약속한 뒤 인기 차종 ‘모카’ 생산 카드를 받아냈다고 한다. 이번 투자로 스페인공장은 5800명의 신규 고용창출을 이뤄냈다. 국내 자동차 업계와는 그야말로 대조적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 기업들은 노사 상생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기업가치 높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황에 기아차 노조는 ‘서민의 발’로 불리는 봉고트럭 증산마저 미루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하루 하루 벼랑 끝에 서있다. 노조는 그들의 아픔과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노조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될 것이고,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lio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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