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커넥션’을 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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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커넥션’을 끊으려면
박진현의 문화카페
2013년 07월 31일(수) 00:00
미국의 백만장자 존 록펠러(1839∼1937)에게는 생전 ‘악덕기업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법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초창기 미국 석유시장을 독점하면서 온갖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뇌물과 리베이트 등의 ‘검은 돈’ 배후에는 으레 록펠러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지난 1909년 록펠러는 ‘강도귀족’이란 오명을 씻기 위해 자선사업에 눈을 돌렸다. 그의 뜻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부인인 애비 록펠러였다. 평소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사교모임에서 알게 된 메리 퀸, 릴리 블리스와 함께 1929년 맨하탄 한복판에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모마)을 건립했다. 록펠러 여사가 내놓은 기금으로 모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을 품에 안았다. 일명 ‘록펠러 컬렉션’으로 불리는 이 작품들은 매년 전 세계에서 250만 명이 찾는 모마의 아이콘이 됐다.

어디 록펠러 뿐인가. 광산재벌 구겐하임, 철도왕 밴더빌트, 석유재벌 폴 게티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수완으로 부를 일궈냈다. 하지만 여느 기업인과 다른 점은 퇴임 후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세상에 기증함으로써 지도층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들 컬렉션이 모태가 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LA 폴 게티 미술관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위대한 유산이 됐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두 아들의 집에 ‘깊숙이 쟁여져 있던’ 미술품들이 세상에 나왔다. 마치 무슨 죄인처럼 미술품들이 ‘끌려 나와’ 차에 실려가는 모습은 예술에 대한 모독을 느끼게 했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며 버텨 온 사람의 컬렉션은 순수한 미술사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림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수모를 당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지도층들의 컬렉션을 미술관에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미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사실 미술품이 검은 돈과 짝을 이루는 ‘미술품 커넥션’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유명해진 ‘행복한 눈물’에서부터 2011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로 쓰인 ‘학동마을’, 최근 CJ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으로 구입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제2, 3의 ‘행복한 눈물’이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품을 예술이 아닌, 탐욕의 대상으로 보는 한 ‘미술품 커넥션’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미국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러운 적이 없다.



〈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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