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g 꿈의 공, ‘보치아’를 아시나요?
지난 4∼6일 호남대 광산캠퍼스 문화체육관에서 하이트진로배 전국 장애인 보치아 대회가 열렸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인 보치아(boccia)는 일반인들에게 낯설다. 아마 처음 들어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대회 기간 동안 전국 16개 시·도에서 모인 300여 명의 선수들이 서로 기량을 겨뤘다.
대회 마지막 날인 6일 BC 1종목 결승에 진출한 광주 노영진(21·동강대 사회복지행정과 1년)이 눈길을 끌었다. 상대는 국가대표이자 국내 랭킹 1위인 김명수(28·충북 비상드림).
국내랭킹 24위인 노영진은 상대의 노련한 경기진행에 밀려 1∼3엔드까지 1-3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노영진은 마지막 4엔드에서 4개 남은 공을 하나하나 신중히 던져 표적구에 가까이 붙은 상대의 공을 튕겨내면서 4-3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보치아에 입문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딴 금메달이었다. 우승을 확정지은 후 노영진은 두 주먹을 힘껏 쥐고 환호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뒤에서 휠체어를 잡고 있던 어머니 이향미(45)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광주일보 7월8일 자 15면〉
어머니 이씨는 불과 생후 8일 후 아들의 이상증세로 병원을 찾았으나 ‘핵(核)황달’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몸의 피를 바꾸는 교환수혈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아들은 뇌성마비 장애를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어머니는 “살려만 달라”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2007년 어느 날, 광주 은혜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보치아 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체육수업 시간에 보치아를 접한 아들이 보치아의 매력에 끌린 것이다. 그때부터 올해까지 6년째 모자는 한 팀이 돼 전국 대회장을 찾아 경기에 나서고 있다.
어머니 이씨는 뇌성마비 1등급인 아들의 운동 후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리치료보다 몸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보치아를 통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갈 데’가 있고, ‘할 게’ 생겼다. 보치아 국가대표라는 꿈과 목표가 생겼다.”
보치아 명칭은 ‘보스’(boss)를 뜻하는 라틴어 ‘보티아’(bottia)에서 유래했다. 국제 뇌성마비 스포츠 레크리에이션협회(CP-ISRA)에서 1980년대 초 처음 소개해 1988년 서울 패럴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경기가 치러졌다. 우리나라는 보치아 강국이다. 1988년부터 2012년 런던 패럴림픽까지 7연패를 달성한 효자종목이다.
경기는 12.5m×6m 크기의 나무바닥에서 진행된다. 게임 규칙은 흰색 표적구를 먼저 던져놓고 선수들이 야구공보다 약간 큰 적색·청색 공을 각각 6개씩 규칙에 따라 번갈아가며 던지거나 굴려 표적구에 가까운 공의 숫자에 따라 승패를 결정한다.
경기는 장애 정도에 따라 BC1∼BC4 종목으로 구분된다.
BC1 종목 선수들은 휠체어에서 자칫 떨어질 수도 있어 끈으로 허리를 묶는다. 또, BC3 종목 선수들은 손으로 공을 집을 수가 없는 중증장애 때문에 경기 보조요원의 도움을 받아 마우스 스틱이나 헤드 스틱, 미끄럼틀 모양의 홈통을 사용해 공을 굴린다.
현재 광주시 장애인 보치아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50여명. 하지만 전용 연습장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은 광주 은혜학교 시설을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양가죽 재질로 만든 보치아 공과 홈통 등 장비 구입비용도 부담스럽다. 때문에 탁구와 양궁에 이어 실업팀 창단에 대한 바람도 크다.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애정어린 관심도 절실하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공 하나를 던지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휠체어에 앉은 채 근육 강직 때문에 제때 공을 놓을 수 없어 수십 차례 시도 끝에 성공하고, 입에 스틱을 물고 홈통의 공을 굴리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275g의 공 하나 하나마다 자신의 꿈과 도전정신을 담아 경기에 임하는 광주 보치아 선수들을 응원한다.
/송기동 체육부장 song@kwangju.co.kr
대회 마지막 날인 6일 BC 1종목 결승에 진출한 광주 노영진(21·동강대 사회복지행정과 1년)이 눈길을 끌었다. 상대는 국가대표이자 국내 랭킹 1위인 김명수(28·충북 비상드림).
보치아에 입문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딴 금메달이었다. 우승을 확정지은 후 노영진은 두 주먹을 힘껏 쥐고 환호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뒤에서 휠체어를 잡고 있던 어머니 이향미(45)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광주일보 7월8일 자 15면〉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2007년 어느 날, 광주 은혜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보치아 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체육수업 시간에 보치아를 접한 아들이 보치아의 매력에 끌린 것이다. 그때부터 올해까지 6년째 모자는 한 팀이 돼 전국 대회장을 찾아 경기에 나서고 있다.
어머니 이씨는 뇌성마비 1등급인 아들의 운동 후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리치료보다 몸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보치아를 통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갈 데’가 있고, ‘할 게’ 생겼다. 보치아 국가대표라는 꿈과 목표가 생겼다.”
보치아 명칭은 ‘보스’(boss)를 뜻하는 라틴어 ‘보티아’(bottia)에서 유래했다. 국제 뇌성마비 스포츠 레크리에이션협회(CP-ISRA)에서 1980년대 초 처음 소개해 1988년 서울 패럴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경기가 치러졌다. 우리나라는 보치아 강국이다. 1988년부터 2012년 런던 패럴림픽까지 7연패를 달성한 효자종목이다.
경기는 12.5m×6m 크기의 나무바닥에서 진행된다. 게임 규칙은 흰색 표적구를 먼저 던져놓고 선수들이 야구공보다 약간 큰 적색·청색 공을 각각 6개씩 규칙에 따라 번갈아가며 던지거나 굴려 표적구에 가까운 공의 숫자에 따라 승패를 결정한다.
경기는 장애 정도에 따라 BC1∼BC4 종목으로 구분된다.
BC1 종목 선수들은 휠체어에서 자칫 떨어질 수도 있어 끈으로 허리를 묶는다. 또, BC3 종목 선수들은 손으로 공을 집을 수가 없는 중증장애 때문에 경기 보조요원의 도움을 받아 마우스 스틱이나 헤드 스틱, 미끄럼틀 모양의 홈통을 사용해 공을 굴린다.
현재 광주시 장애인 보치아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50여명. 하지만 전용 연습장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은 광주 은혜학교 시설을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양가죽 재질로 만든 보치아 공과 홈통 등 장비 구입비용도 부담스럽다. 때문에 탁구와 양궁에 이어 실업팀 창단에 대한 바람도 크다.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애정어린 관심도 절실하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공 하나를 던지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휠체어에 앉은 채 근육 강직 때문에 제때 공을 놓을 수 없어 수십 차례 시도 끝에 성공하고, 입에 스틱을 물고 홈통의 공을 굴리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275g의 공 하나 하나마다 자신의 꿈과 도전정신을 담아 경기에 임하는 광주 보치아 선수들을 응원한다.
/송기동 체육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