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부산, 그리고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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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부산, 그리고 도쿄
김 미 은
문화부장
2013년 06월 12일(수) 00:00
박수 소리, 환호와 함께 커튼콜이 끝났다. 얼른 눈물을 닦고, 로비로 나와 관객들을 인터뷰했다. 그 때 누군가가 히로키상이 울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쑥쓰러운듯 “그냥 눈물이 난다”며 웃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었다.

5월31일과 6월1일, 일본 도쿄 티아라 고토홀. ‘화려한 휴가’ 공연장에서 느낀 감정은 묘했다. 첫날 로비에서 가장 먼저 들은 건 일본인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이 노래를 둘러싼 말도 안되는 논쟁을 겪고 간 터라 일본 한복판에서 듣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일행 모두 울컥했다.

이날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인들이었다. 공연 내내 객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고, 로비에 전시된 5·18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는 관객들도 많았다.

히로키상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2월이었다. 일본문화운동단체 ‘우타고에’ 회원인 그는 ‘화려한 휴가’ 일본 초청을 위해 광주를 방문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도쿄 공연을 위해서는 일단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데, 어렵고 큰 숙제를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다시 만난 그에게 “약속을 지키셨다”며 말을 건네자 “사실 많이 힘들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화려한 휴가’ 유치를 확정 지은 회원들은 1년 전부터 ‘뮤지컬 화려한 휴가를 성공시키는 도쿄모임’을 꾸렸다. 대관료, 장비 대여료 등 1억여 원에 달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티켓 판매에 발벗고 나섰다. 제작한 홍보 리플릿만 8만 장이었다.

공연 후에도 회원들은 광주에서 준비해간 ‘일본어판’ 5·18자료집과 리플릿을 나눠주며 목이 터져라 ‘5·18’을 홍보했다. “우리라면 저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주 출신이라는 50대 재일교포 두명의 인터뷰 내용이 가슴에 박혔다. “30년도 더 지난, 한국의 어떤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뮤지컬을 일본사람들이 유치하고, 저렇게 홍보하는 걸 보니 한국 사람으로서 놀랍고,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

히로키상은 “‘화려한 휴가’가 역사왜곡을 일삼는 요즘 일본의 절박한 현실을 환기시키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돼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며 뿌듯해 하기도 했다.

올해 오월은 우연찮게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오월’을 바라볼 수 있었다.

5월 19일에는 부산에 있었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린 ‘5·18 광주민중항쟁 33주년 기념 전시회-그 날의 훌라송’ 취재차였다. 전시 한달 전쯤부터 준비 과정을 취재하며 느낀 첫번째 감정은 ‘고맙다’였다. 광주도, 서울도 아닌 심리적으로 굉장히 먼 부산에서 대규모 5월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그냥 감사했다.

사진 작가 11명의 작품 150여점이 내걸린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광주가 누군가에 의해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는 관람객들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 “광주가 더 이상 섬이 아니길 바란다”는 미술관장의 말은 깊은 울림을 줬다.

최근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정년 퇴임 고별강연에서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전남도청을 점령했다고 보도한 내용은 인류가 달나라를 점령했다는 얘기보다 더 신기한 얘기”라고 언급했다.

공상영화에나 등장할 내용이 버젓이 ‘방송’이라는 공기(公器) 를 통해 흘러나오는 게 요즘의 대한민국이다. 5·18과 광주를 둘러싸고 ‘일베’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자아낸다.

뮤지컬 ‘화려한 휴가’에는 이런 노래가 나온다. “우릴 기억해요. 제발 나를 잊지마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에서, 부산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서 ‘힘’을 얻는 이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광주는 점차 그들을 잊어갔던 건 아닐까. 5월 내내 화두였던 ‘임을 위한 행진곡’과 ‘북한 개입설’ 사태에서 광주 시민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부산 인근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고은사진미술관에 한번 들러보면 좋겠다. 해운대에서 도보로 2∼3분거리다. 전시는 7월31일까지 계속된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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