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만학도, 교수로 ‘인생 2막’ 열다
광주대 이충구 박사, 안양대 ‘K-컬처 한국어학과’ 전임교수 임용
“세상의 문 두드리면 열린다…이탈리아 세종학당서 가르치고파”
“세상의 문 두드리면 열린다…이탈리아 세종학당서 가르치고파”
![]() 50대에 석사과정을 시작해 최근 안양대 전임교수로 임용된 이충구 박사. <이충구 박사 제공> |
50대에 대학원 문턱을 밟은 ‘만학도’가 끊임없는 노력 끝에 최근 대학교수로 임용되며 새롭게 인생2막을 펼쳐나가고 있다.
지난 2016년 광주대 대학원 평생교육학과 석사과정을 시작한 이충구(여·62) 박사는 최근 안양대 글로벌무역유통학과 내에 신설된 ‘K-컬처 한국어학과’ 강의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식품영양학과 졸업 후 교육 관련업에 종사해 온 이 박사는 52세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4년 후 박사 학위를 땄다.
“50년 넘게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다가 남편이 광주대 교수로 임용되는 바람에 덜컥 연고도 없는 광주로 내려왔어요. 남편의 권유로 평생교육학과 석사과정을 밟게됐죠. ‘밥 먹고 공부만 하는’ 삶을 꿈꾸던 찰나 가슴이 뛰었어요. 지역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외로웠기 때문에 당시 함께 공부했던 만학도들이 큰 힘이 됐죠. 레포트 쓰는 법도 모르던 ‘새내기 만학도’였지만 교수님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배워나갔답니다.”
석사 졸업 후 남편으로부터 박사 학위 취득을 권유받았으나 이 박사는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당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어학당에서 유학생들을 지도하며 학생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죠. 처음에는 이 나이에 박사 학위를 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대학원에서 평생교육을 깊이 있게 배워야겠다는 확신이 들어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후회없는 선택이죠.”
이 박사는 인생 2막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그 역시 석사 졸업 후 대학 어학당 취업을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100여 통의 원서를 제출했으나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으며 깊은 낙심에 빠진 바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린 끝에 여주대학교 한국어학당 합격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당시 숙박비와 식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돈이 없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이때 쌓은 첫 강사 경력은 전주대와 광주여자대 한국어학당 강사 임용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쉼 없이 달려온 끝에 이 박사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학교수 임용이라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일이 있다고 지나치게 기뻐할 필요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무너질 필요도 없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사랑한다면 세상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 보길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정년을 3년 앞둔 이 박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 당시 만난 수많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알릴 방법이 없어 아쉬웠어요. 현지에 세종학당을 개설해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새로운 목표죠. 갈망하고 노력하면 꿈을 반드시 이뤄집니다. 수년 뒤 이탈리아 남부 어느 도시에서 세종학당 선생님으로 활동할 제 모습을 꿈꿉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지난 2016년 광주대 대학원 평생교육학과 석사과정을 시작한 이충구(여·62) 박사는 최근 안양대 글로벌무역유통학과 내에 신설된 ‘K-컬처 한국어학과’ 강의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50년 넘게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다가 남편이 광주대 교수로 임용되는 바람에 덜컥 연고도 없는 광주로 내려왔어요. 남편의 권유로 평생교육학과 석사과정을 밟게됐죠. ‘밥 먹고 공부만 하는’ 삶을 꿈꾸던 찰나 가슴이 뛰었어요. 지역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외로웠기 때문에 당시 함께 공부했던 만학도들이 큰 힘이 됐죠. 레포트 쓰는 법도 모르던 ‘새내기 만학도’였지만 교수님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배워나갔답니다.”
“당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어학당에서 유학생들을 지도하며 학생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죠. 처음에는 이 나이에 박사 학위를 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대학원에서 평생교육을 깊이 있게 배워야겠다는 확신이 들어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후회없는 선택이죠.”
이 박사는 인생 2막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그 역시 석사 졸업 후 대학 어학당 취업을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100여 통의 원서를 제출했으나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으며 깊은 낙심에 빠진 바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린 끝에 여주대학교 한국어학당 합격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당시 숙박비와 식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돈이 없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이때 쌓은 첫 강사 경력은 전주대와 광주여자대 한국어학당 강사 임용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쉼 없이 달려온 끝에 이 박사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학교수 임용이라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일이 있다고 지나치게 기뻐할 필요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무너질 필요도 없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사랑한다면 세상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 보길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정년을 3년 앞둔 이 박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 당시 만난 수많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알릴 방법이 없어 아쉬웠어요. 현지에 세종학당을 개설해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새로운 목표죠. 갈망하고 노력하면 꿈을 반드시 이뤄집니다. 수년 뒤 이탈리아 남부 어느 도시에서 세종학당 선생님으로 활동할 제 모습을 꿈꿉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