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그들…침몰 원인·승선 인원 81년째 ‘미궁’
[심층기획] 3·1절 맞아 되돌아 본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광복 이후 귀국하다 폭발 침몰…항로 변경·연료 부족 등 여전히 의혹
탑승 3542명 중 광주·전남 592명으로 전국 두번째…사망자도 99명
일본이 제공한 승선 명부 신뢰도 낮아…“정부 차원 규명 절실” 목소리
광복 이후 귀국하다 폭발 침몰…항로 변경·연료 부족 등 여전히 의혹
탑승 3542명 중 광주·전남 592명으로 전국 두번째…사망자도 99명
일본이 제공한 승선 명부 신뢰도 낮아…“정부 차원 규명 절실” 목소리
![]() 우키시마호. |
3·1절 107주년, 광복 81주년을 맞았음에도 광주·전남 지역민 수백명이 사망·실종된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에 대한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광복(8월 15일) 직후인 1945년 8월 22일 일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 오미나토항을 출발한 한국인 귀국선이 같은 달 24일 교토부 마이즈루항 인근 해상에서 폭발·침몰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승선자 명부를 우리 정부에 전달해 왔음에도 명부 자체의 신뢰도가 낮아 사고 원인은커녕 피해자 수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태다. 이에 정부와 민간 차원의 관심을 확대해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24년부터 일본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총 75건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광주·전남(당시 전남) 지역 탑승자는 59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명부 인원 3542명 가운데 16.7%에 해당하는 규모로, 충남(943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사망자 역시 99명으로 충남(128명)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강제연행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 국민징용령이 실시된 1939년부터는 모집 형식으로 지역민들을 동원했고, 1942년부터는 ‘관 알선(官斡旋)’ 형식으로, 1944년부터는 강제 징용했다.
우키시마호에 전남 지역민들이 많았던 것은, 일본이 농업 지역이었던 삼남(전라·경상·충청)을 중심으로 국외 강제동원을 해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부 지역은 국내 군수시설로 동원되는 경우가 다수였던 것과 반대다. 특히 가뭄 등으로 생계난을 겪은 전남 지역민들이 일제의 꾐에 넘어가 모집·관 알선 단계부터 취업 알선 형식으로 넘어간 사례도 다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인덕 청암대 재일코리아연구소장은 “전남은 피해자 수가 많다는 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의 상징적인 지역”이라며 “현해탄에서는 우키시마호를 비롯해 귀국선 침몰 사고가 다수 발생했다. 국가의 귀환 정책 부재가 결합된 참사”라고 강조했다.
끌려간 전남 지역민들은 군속(군무원), 징용공, 철도·탄광 노동자 등으로 일하며 혹독한 노동과 폭력에 시달렸다. 식량조차 제대로 배급받지 못한 채 임금 상당 부분을 ‘우편저금’ 명목으로 강제 저축당한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은 “한국인들은 각종 기피 업무에 배치됐다”며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고 근로 환경 역시 열악했다. 상당수가 가설주택에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침몰 경위를 둘러싼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해 선박이 폭발했다”며 “승선자 명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뒤늦게나마 승선자 명부가 공개되면서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욱이 핵심 증거인 선체는 일본이 방치하다가 1954년 인양 후 고철로 매각했으며, 희생자 유해도 신원 확인 없이 화장해 일본 도쿄 유텐사 등지에 500여위 안치한 것이 전부다.
일각에서는 한국인들을 귀환시킬 경우 강제동원 과정 등의 인권 침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일본 측이 사고로 위장해 선박을 폭침시켰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충분한 준비 시간 없이 출항한 점, 부산 직항이라던 항로가 일본 교토 인근으로 변경된 점, 연료 부족 정황 등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에서는 사건 피해자들을 전국 단위로 규합해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고(故)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은 1992년 8월 피해자들을 모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4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가 확정됐다.
그나마 최근 확보된 승선자 명부도 오류 투성이다. 일본이 제공한 명부에는 총 1만8176건의 인명 정보가 있었는데, 중복된 인명 정보를 제하고 보니 3542명으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해당 명부는 일본이 ‘사후에’ 회사 측의 자료와 주민 등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승선자들을 대조해 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제3자를 통해 급조한 명부인 만큼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는 “일본 측이 제공한 명부는 그들이 ‘원하는 사망자 수’에 맞춰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망자로 기록됐음에도 생존한 사례가 있는 등 명부 자체의 오류가 상당하다”고 꼬집었다.
일본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명부를 확신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창씨명으로 기록됐고 명부마다 표기가 조금씩 다른 데다 실존 인물 여부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심층 분석을 통해 오류를 걸러내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까지도 1년여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국민들의 관심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 일본에 진상 규명과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조세이 탄광 사건’도 80여년간 묻혀 있다가 일본 시민단체의 관심이 확산되며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유해 발굴이 합의되는 진전이 있었다”며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재조명해 진상 규명과 정의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우키시마호 사건은 광복(8월 15일) 직후인 1945년 8월 22일 일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 오미나토항을 출발한 한국인 귀국선이 같은 달 24일 교토부 마이즈루항 인근 해상에서 폭발·침몰한 사건이다.
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24년부터 일본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총 75건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광주·전남(당시 전남) 지역 탑승자는 59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명부 인원 3542명 가운데 16.7%에 해당하는 규모로, 충남(943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사망자 역시 99명으로 충남(128명)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우키시마호의 예정 항로. |
김인덕 청암대 재일코리아연구소장은 “전남은 피해자 수가 많다는 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의 상징적인 지역”이라며 “현해탄에서는 우키시마호를 비롯해 귀국선 침몰 사고가 다수 발생했다. 국가의 귀환 정책 부재가 결합된 참사”라고 강조했다.
끌려간 전남 지역민들은 군속(군무원), 징용공, 철도·탄광 노동자 등으로 일하며 혹독한 노동과 폭력에 시달렸다. 식량조차 제대로 배급받지 못한 채 임금 상당 부분을 ‘우편저금’ 명목으로 강제 저축당한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은 “한국인들은 각종 기피 업무에 배치됐다”며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고 근로 환경 역시 열악했다. 상당수가 가설주택에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침몰 경위를 둘러싼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해 선박이 폭발했다”며 “승선자 명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뒤늦게나마 승선자 명부가 공개되면서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욱이 핵심 증거인 선체는 일본이 방치하다가 1954년 인양 후 고철로 매각했으며, 희생자 유해도 신원 확인 없이 화장해 일본 도쿄 유텐사 등지에 500여위 안치한 것이 전부다.
일각에서는 한국인들을 귀환시킬 경우 강제동원 과정 등의 인권 침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일본 측이 사고로 위장해 선박을 폭침시켰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충분한 준비 시간 없이 출항한 점, 부산 직항이라던 항로가 일본 교토 인근으로 변경된 점, 연료 부족 정황 등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2001년 8월 24일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항에서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
그나마 최근 확보된 승선자 명부도 오류 투성이다. 일본이 제공한 명부에는 총 1만8176건의 인명 정보가 있었는데, 중복된 인명 정보를 제하고 보니 3542명으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해당 명부는 일본이 ‘사후에’ 회사 측의 자료와 주민 등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승선자들을 대조해 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제3자를 통해 급조한 명부인 만큼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는 “일본 측이 제공한 명부는 그들이 ‘원하는 사망자 수’에 맞춰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망자로 기록됐음에도 생존한 사례가 있는 등 명부 자체의 오류가 상당하다”고 꼬집었다.
일본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명부를 확신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창씨명으로 기록됐고 명부마다 표기가 조금씩 다른 데다 실존 인물 여부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심층 분석을 통해 오류를 걸러내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까지도 1년여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국민들의 관심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 일본에 진상 규명과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조세이 탄광 사건’도 80여년간 묻혀 있다가 일본 시민단체의 관심이 확산되며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유해 발굴이 합의되는 진전이 있었다”며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재조명해 진상 규명과 정의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