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고려청자의 푸른 숨결 오늘에 되살리는 손길
남도 체험로드-강진 고려청자이야기
2026년 02월 23일(월) 10:00
고려청자박물관에 전시된 민간요 작품들. /최현배 기자
강진에 오면 흙이 먼저 말을 건넨다. 산과 들에서 채취한 흙은 물을 만나고, 사람의 손을 거쳐 마지막에 불 앞에 선다. 그리고 그 흙은 시간을 건너 ‘고려청자’라는 이름의 문화가 된다.

고려청자의 고향 강진에서 청자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문화’ 그 자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자는 고려 왕실과 귀족의 식탁을 채웠고, 바닷길을 따라 개경까지 옮겨졌다. 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고려청자의 중심에 강진이 있음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고려청자는 9~10세기 강진에서 시작해 11세기 기술적 완성도를 높였고 12세기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로 절정을 맞았다. 옥빛이라 불린 비색은 단순한 색을 넘어 고려청자를 세계 도자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 결정적 미감(美感)이다. 철분이 거의 없는 태토와 유약, 그리고 가마 속 미묘한 불 조절이 만나야만 가능한 색이다. 강진 사당리와 용운리 일대에 밀집한 가마터들은 이 비색청자가 탄생한 현장이었음을 증명한다.

이후 13세기에는 문양과 기법이 더욱 다양해졌고, 14세기에 이르러 쇠퇴를 맞지만 그 기술은 분청과 백자로 이어지며 한국 도자의 뿌리가 됐다.

강진 고려청자의 또다른 특징은 상형청자라는 점이다. 상형청자는 국화잎이나 토끼, 거북이처럼 식물과 동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다. /최현배 기자
강진 고려청자의 또 다른 특징은 ‘상형청자’라는 점이다.

고려청자박물관 청자재현연구동에서 만난 허상숙 조각실장은 “상형청자는 국화잎이나 토끼, 거북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라며 “상형문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참외 모양의 병이나 거북이와 사자 형태의 향로 등은 고려인의 자연관과 상상력이 도자 위에 고스란히 담긴 사례다. 단순히 장식적이기보다 자연과 사물을 상징으로 읽어낸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정교한 상형청자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높은 공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인요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더욱 그렇다.

“개인요는 공력이 워낙 많이 들어서 많이 하지는 못해요. 대신 재현을 통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자재현연구동에서 도공이 매병에 조각장식을 하고 있다. /최현배 기자
오늘날 강진에서는 과거의 기술을 그대로 되살리는 ‘재현’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고려청자의 정신과 제작 방식을 현재로 옮기는 작업이다.

강진군 대구면에 위치한 고려청자박물관은 이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고려청자박물관 본관을 중심으로 청자재현연구동, 청자빚기 체험장,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강진청자판매장으로 구성돼 있다.

재현연구동에서는 도공들이 실제로 청자를 만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상형청자를 만드는 공간, 물레 성형이 이뤄지는 성형실, 문양을 새기는 조각실까지 청자가 완성되기까지의 동선이 그대로 이어진다.

성형실에서는 잘 정제된 흙을 물레 위에 올려 매병과 주병 같은 전통 기형을 빚는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작품 일부는 체험용으로 활용돼 관람객이 직접 청자를 빚어볼 수도 있다. 조각실은 만들어진 형태에 문양을 새기는 공간이다. 음각, 양각, 투각, 상감 등 고려청자의 다양한 문양 기법이 이곳에서 구현된다.

고려청자박물관 도공이 청자축제를 앞두고 생활자기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최현배 기자
취재진이 방문한 1월에는 지역 최대 축제인 청자축제를 앞두고 생활자기 제작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공 인원이 한정돼 있어서 축제 대비용과 작품을 동시에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나면 다시 작품 작업에 들어간다. 현재 재현연구동에서 활동하는 도공은 10여 명이다. 과거에 비하면 숫자는 줄었지만 이들의 손끝에서 고려청자의 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청자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불이다. 관요에서는 1년에 네 차례 정도 가마에 불을 지핀다. 수천 도에 이르는 불길 속에서 흙은 비로소 청자가 된다. 관요에서 만들어진 청자는 판매를 통해 강진군의 수입으로도 이어진다. 박물관 밖에는 전통 가마도 남아 있어, 고려시대 가마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관요 외에도 개인 작가들이 사용하는 개인요 가마가 두 곳 더 있어, 강진 전역에서 청자의 불은 지금도 꺼지지 않는다.

청자축제를 앞두고 생활자기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도공. /최현배 기자
강진의 청자 이야기는 축제로 이어진다. 제54회 강진 청자축제가 2월 21일부터 3월 2일까지 고려청자박물관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청자를 중심으로 한 강진의 정체성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청자 제작 시연과 체험, 전시, 판매까지 청자의 과거와 현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청자는 박물관 안에 머무는 유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축제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정보화공간. /최현배 기자
박물관에서는 고려청자의 제작과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첫 번째 과정은 수비(水飛). 자연에서 채취한 점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 흙을 발로 밟고 적당한 크기로 만죽하는데 이 작업을 연토(鍊土)라 한다.

이후 물레를 사용하거나 틀로 찍어내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드는 성형, 성형된 그릇을 적당히 말린 뒤 표면을 다듬는 정형을 거치고 양각·음각·투각·상감 등 조각 장식은 그릇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새겨 넣는다. 그늘에서 충분히 말린 그릇은 800℃ 정도의 저온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 속에 그릇을 담궈 시유(施釉)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1200~1300℃ 고온에서 구워내 청자를 완성한다. 가마의 구조나 땔감의 종류, 불을 지펴 태우는 시간과 방법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색감과 완성도가 달라진다.

고려청자박물관 야외 풍경. /최현배 기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전시도 눈길을 끈다.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에서는 ‘고려청자, 천년의 숨결을 흔들다’를 주제로 몰입형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정보화 공간, 시각화 공간, 체험 공간으로 나뉜 전시는 고려청자의 탄생과 이동, 미감의 흐름을 영상과 빛으로 풀어낸다. 유물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고려청자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신비한 경험이다.

세계적인 청자 문화유산을 보존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고려청자박물관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2025년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우수 박물관으로 선정됐다. 평가 인증제도가 도입된 2017년부터 2019년, 2022년, 2025년까지 4회 연속 획득한 것으로 전남도내 군 단위 공립박물관 중 유일한 성과다.

/이보람·남철희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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