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과 미래 비전, 누가 맡아야 하는가 -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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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된 기획예산처 장관의 주요 업무는 중장기 국가 발전전략 수립, 재정정책 수립, 예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 민간투자 및 국가채무 관리다. 국가의 곳간을 관리할 뿐 아니라 국가 발전의 방향성을 설계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이 막중한 임무에 적합한 인물이 갖춰야 할 핵심 자질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은 이렇게 답했다. GPT는 “국가의 미래를 현재의 유혹보다 우선시할 수 있는 숫자를 다루는 윤리적 전략가”라 답했고, 제미나이는 “숫자라는 권력 뒤에 숨지 않는 책임감”을, 클로드는 “한정된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공정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전략적 판단력과 청렴성을 갖춘 인물”이라고 꼽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공직자의 덕목으로 공렴(公廉)을 강조했다. 공렴은 공정과 청렴으로 “사심 없이 공익을 위해 공정하게” 일하고 “부정부패 없이 깨끗한 행정을 펴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싸우며 그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기획예산처 장관은 단순한 행정관료가 아니라, 오천백삼십 만 국민의 곳간을 책임지고 국가 발전전략의 핵심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이기에, 정치인의 덕목이 요구되는 자리에 가깝다.
국민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의 민낯을 똑똑히 목격했다. 보좌관에 대한 상습적 폭언과 사적 심부름, 위장 미혼을 통한 아파트 편법 청약과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 의혹, 조부의 훈장을 앞세운 자녀의 사회기여 입학 논란까지, 공직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쏟아졌다. 더욱이 내란 직후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 “탄핵 소추가 불법”이라며 내란을 옹호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꿨다. 영혼이 없는 게 아니라, 영혼조차 능수능란하게 갈아 끼우는 모습이었다. 이 분 앞에 인공지능이 알려준 ‘윤리적 전략가’라는 장관의 기준도, ‘공렴, 책임윤리’란 공직자나 정치인의 기준도 모두 무색하다.
우리는 내란을 통해 한 광인의 일탈적 행위만이 아니라 영혼 없는 관료들의 조직화된 무책임이 사회를 얼마나 큰 위험에 빠뜨리는지 목도했다. 12·3 내란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한국 사회의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법기술자에 국가를 맡겨 충분히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숫자에만 능한 경제기술자만으로는 나라의 리더십은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 엄격한 윤리, 청렴, 공렴, 노블레스 오블리주, 도덕성이 바탕이 되어야 국가의 방향성, 곳간을 책임질 수 있다.
한국의 공적 신뢰는 세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사회자본, 공적 신뢰가 낮으면 사람들은 장기 이익, 그리고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단기적 이익 추구,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파편화된다.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 구성원들의 법률과 규범 준수 등이 강화되어야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며 편법으로 이익을 극대화해 온 사람, 언제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치적 신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곳간과 나라의 방향성을 책임지는 자리에 간다면, 국민들이 국가와 제도를 신뢰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아파트 청약점수 올리기 위한 편법부터 어떻게든 자식을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까? 경제수장의 윤리적 해이, 편법과 특권으로 사익을 최대로 추구해온 삶의 궤적은, 개인의 흠결만이 아니라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내란 이후 다시 만난 세계에서 국민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자신들의 본질적 책무가 무엇인지 그 중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란의 교훈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무엇을 위해 내란을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는지 초심으로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이 인사가 보수의 민낯을 폭로하기 위한 정치술이었다면 성공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내란으로 뒤틀어진 나라의 근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실패한 인사이다. 이런 인물을 청문회까지 올린 것 자체가 추위에 떨며 내란세력과 싸웠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공직자의 덕목으로 공렴(公廉)을 강조했다. 공렴은 공정과 청렴으로 “사심 없이 공익을 위해 공정하게” 일하고 “부정부패 없이 깨끗한 행정을 펴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싸우며 그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기획예산처 장관은 단순한 행정관료가 아니라, 오천백삼십 만 국민의 곳간을 책임지고 국가 발전전략의 핵심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이기에, 정치인의 덕목이 요구되는 자리에 가깝다.
우리는 내란을 통해 한 광인의 일탈적 행위만이 아니라 영혼 없는 관료들의 조직화된 무책임이 사회를 얼마나 큰 위험에 빠뜨리는지 목도했다. 12·3 내란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한국 사회의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법기술자에 국가를 맡겨 충분히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숫자에만 능한 경제기술자만으로는 나라의 리더십은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 엄격한 윤리, 청렴, 공렴, 노블레스 오블리주, 도덕성이 바탕이 되어야 국가의 방향성, 곳간을 책임질 수 있다.
한국의 공적 신뢰는 세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사회자본, 공적 신뢰가 낮으면 사람들은 장기 이익, 그리고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단기적 이익 추구,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파편화된다.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 구성원들의 법률과 규범 준수 등이 강화되어야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며 편법으로 이익을 극대화해 온 사람, 언제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치적 신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곳간과 나라의 방향성을 책임지는 자리에 간다면, 국민들이 국가와 제도를 신뢰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아파트 청약점수 올리기 위한 편법부터 어떻게든 자식을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까? 경제수장의 윤리적 해이, 편법과 특권으로 사익을 최대로 추구해온 삶의 궤적은, 개인의 흠결만이 아니라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내란 이후 다시 만난 세계에서 국민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자신들의 본질적 책무가 무엇인지 그 중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란의 교훈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무엇을 위해 내란을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는지 초심으로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이 인사가 보수의 민낯을 폭로하기 위한 정치술이었다면 성공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내란으로 뒤틀어진 나라의 근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실패한 인사이다. 이런 인물을 청문회까지 올린 것 자체가 추위에 떨며 내란세력과 싸웠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