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닿지 않는 키오스크…여전히 장애인에겐 ‘높은 벽’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 하루 전…휠체어 타고 키오스크 이용해보니
화면 조절 기능 없고 스크린 높아…점자·음성 안내도 미비
광주 공공기관·지자체·병원 등 예산난 호소하며 교체 지연
2026년 01월 26일(월) 19:30
26일 광주시 동구 충장로 한 카페에서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키오스크를 조작하고 있다.
광주시 광산구 첨단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설치된 무인민원발급기 키오스크. 휠체어에 직접 앉아 키오스크에 다가가 보니, 키오스크에 손이 닿기도 전에 키오스크 기계에 다리가 먼저 ‘턱’ 걸렸다. 손을 뻗어 봐도 터치식 화면에 손이 닿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옆을 보고 앉아 키오스크를 누르려 했다. 그런데 이제는 키오스크 맨 위에 있는 ‘주민등록등·초본 발급’, ‘가족관계등록부 발급’ 등 버튼을 도저히 누를 수가 없었다.

오는 28일부터 키오스크를 설치·운영 중인 공공 및 민간 사업장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직접 이용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BF) 키오스크로 교체해야 하지만, 여전히 현장은 장애인들에게 ‘벽’이었다. BF 키오스크는 장애인과 고령자 등이 무인단말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높이 조절 기능을 비롯해 점자·음성 안내, 고대비 화면, 큰 글씨와 돋보기 기능, 수어 영상이나 시각적 대체 안내 등을 갖춘 기기를 가리킨다.

민간 업체들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BF 키오스크 도입을 미루고 있을뿐 아니라, 광주시와 5개 자치구조차 의무 설치 유예기간 만료일까지 대부분의 키오스크를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6일 직접 휠체어를 타고 충장동 행정복지센터와 동구청 앞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해 보니, 기기가 일체형 구조여서 휠체어가 안쪽으로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화면에 손을 대기 위해 몸을 비틀거나 옆으로 돌아서야 했다.

광산구 첨단 종합사회복지관 무인민원발급기 역시 화면 높이 조절 기능이 없고 터치스크린 위치가 지나치게 높았다. ‘서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키오스크다 보니 휠체어 이용자는 아예 누를 수 없는 높이에 버튼이 있는 상황이었다. 일부 기기는 음성 안내가 아예 없거나, 구형 이어폰을 꽂아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화면 밝기도 어두워 글씨를 읽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지난 25~26일 광주시 내 공공시설과 각 자치구 무인민원발급기, 동구 충장로·동명동 일대 등 키오스크가 설치된 50여 곳을 직접 둘러봤다. 이들 시설 중 어린이도서관 등 10여곳을 제외하고는 BF 키오스크 기준에 어긋난 점들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놓지 않거나 키오스크 화면을 낮춰 앉은 자리에서도 버튼을 누를 수 있게 해 주는 ‘화면 내리기’ 기능이 없는 경우부터 돋보기·고대비 기능이 없는 경우, 점자 기능이 없거나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 등이었다.

지난해 1월 28일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 학교, 병원뿐 아니라 100인 미만 사업장이면서 바닥면적 50㎡(15평) 이상인 시설은 키오스크를 새로 설치할 경우 배리어프리 기능을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한다. 개정법 시행 이전에 도입한 키오스크도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는 28일까지 전면 교체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등은 “예산 타령”을 하며 유예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까지도 키오스크 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는 현재 공공시설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 86대를 의무 교체해야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단 한 건도 BF 키오스크로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들어서야 겨우 무등·사직·산수도서관 등에 설치된 32대를 9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교체할 계획을 밝힌 데 그쳤다.

동구는 키오스크 48대를 교체해야 하는데 올해 상반기 중 3대를 교체하겠다는 계획만 세웠다. 오는 28일까지 서구는 35대 중 6대, 남구는 46대 중 27대만 교체한다. 북구는(129대), 광산구는(50대)는 “점진적으로 교체하겠다”는 입장뿐, 구체적인 교체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들은 복지부 차원의 별도 보조나 재정 지원이 없어 전액을 자체 예산으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라 예산이 없어 못 교체한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BF 키오스크는 일반 키오스크보다 단가가 높아 초기 설치 비용 부담이 크고, 다양한 장애 유형을 모두 고려한 제품도 아직 제한적”이라며 “자체 예산을 편성해 점진적으로 교체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애인 관련 단체 등에서는 그동안 2년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다는 점 등에서, 지자체가 장애인 인권에 무관심했던 것을 예산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유예기간을 두고도 왜 미뤄지고 방치된 건지 이해하기 어렵고 단계적으로 바꿔 나갔다면 예산부담도 적을텐데 아쉽다”며 “소상공인은 일반 키오스크와 호환되는 보조기기나 보조 인력, 호출벨이 있다면 키오스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완화조건이 있는데, 예외조항 때문에 입법 취지도 무색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뿐만 아니라 경사로가 없어 장애인이 매장 자체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여전히 많기 때문에 키오스크 개선과 함께 상가 접근성 등 전반적인 환경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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