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교육의 출발 다양한 각도서 조망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근대 광주 학교 이야기’ 펴내
근대 광주 학교의 형성과 모습 등 망라
2026년 01월 19일(월) 14:55
광주의 최초 근대학교는 지금의 서석초인 전남관찰부공립소학교(1896년)였다. 1896년 8월 6일 칙령 제36호 지방제도, 관제를 개정해 전라남도 관찰부가 나주에서 광주로 옮기게 되면서 공립소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1896년은 광주 근대교육이 시작된 의미 있는 해다.

1890년대 우리나라는 교육을 매개로 국가의 부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과거제 폐지와 맞물려 새로운 세계에 걸맞는 인재 양성이 필요했다. 당시는 서구 근대 문물이 빠른 속도로 조선사회에 유입되는 시기였다. 새로운 학교 교육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1894년 소학교와 사범학교 설립이 추진됐고, 1895년 7월 22일 칙령 제145호 소학교령이 발표됐다.

근대 광주 학교의 형성과 모습을 담은 책이 최근 발간돼 눈길을 끈다.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사장 노경수)이 펴낸 ‘근대 광주 학교 이야기’는 드곧안 단편적으로 다뤄져 온 광주 교육의 출발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이 발간되기까지 지역문화콘텐츠연구소 류영국 소장, 임선화 책임연구원(광주교대 사회교육과), 조상현 연구원(전남대 사학과) 등이 참여했다.

1906년 통감부에 의해 개정 공포된 교육법에 의해 공립광주보통학교가 새로 들어섰다. 자연스레 광주소학교를 흡수했는데 이름이 개명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수업 년한은 4년이었고, 이 교육법에 따라 기존의 소학교는 역사속에서 지웠다.(한때 서석초 역사가 1906년이라고 알려진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됐다)

책은 크게 ‘학교의 풍경’, ‘학교의 일상’을 주제로 구성돼 있다. 전자가 학교에서의 수업, 건물에 얽힌 이야기, 생활사 등을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시험, 규율화된 일상, 축제와 규율 등을 포함한다.

광주 중학교에서 첫 개교는 1908년 사립숭일학교, 사립수피아여학교였다. 광주농업학교 전신인 도립광주농림학교는 1909년, 공립송정보통학교는 1919년 문을 열었다.

학교 건물은 건축 양식, 시설 외에도 교육 제도 변화를 보여주는 생활사다. 학교 건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시간이 쌓인 ‘기억의 그릇’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근대식 학교가 광주에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엽이다. 오늘과 같은 새 건물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 건물을 빌려 ‘수업이 가능한 장소’로 단장하는 것이었다. 1896년 전남 관찰부가 광주향교의 사마재 건물을 빌려 공립소학교를 개교한 것이 그와 같은 사례다.

‘사람이 모여 앉아 글을 읽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소’가 당시의 모습이었다. 근대 교육이 새롭게 시작됐지만 내부는 전통적 시간 감각과 생활 방식이 혼재된 양상을 보였다.

학교의 모습이 바뀐 것은 양림동에 선교사들이 사립학교를 세우면서였다. 항교나 관아의 건물을 빌려 사용하는 대신 서양식 건물을 세웠는데 붉은 벽돌, 박공지붕, 대칭적 정면 등은 당시로서는 낯선 외관이었다.

초기 공립학교는 3년제였고 관찰사가 교장을 겸직했다. 교원들 지위는 지방 행정 관료 체계에 종속됐으며 초기에는 수신을 비롯해 독서, 산술 등 기초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시험이었다. 특히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입학 시험을 치르는 것은 가장 먼저 시험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1920년대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모집 인원보다 희망자가 많았던 때문이다. “보통학교에 입학하는 아해들에게 입학 시험을 뵈인 사실은 비단 경성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거개 그리한 모양임으로”라는 동아일보(1920년 4월 11일) 기사가 이를 방증한다.

책은 중등학교 입학난이 해마다 심해지는 내용도 다루고 있다. 중등학교 입학 지원자가 급증해 1937년 광주고보의 경우 1대 605였다고 한다. 이는 전국적인 추세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2부제 신설을 주장하는 신문 논설이 생길 정도였다.

임 연구원은 “근대 교육의 시작부터 학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야기하며 광주의 과거를 살펴보고 싶었다. 쓰다보니 지금의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것에 집중하였다”며 “지금의 이야기는 이후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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