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사랑이 모이는 ‘책방 서사’
백운동 까치마을 ‘책방 서사’
직장인 이혜미씨 책방지기 전업
전시회·콘서트·심리학 여행 등 기획
사람과 사람 잇는 플랫폼 목표
24일 김현주 소설가 낭독회
2026년 01월 14일(수) 19:15
광주 남구 백운동에 독립서점 ‘책방서사’에서 오는 24일 김현주 소설가의 낭독회가 열린다. 책방서사 전경.
“나는 너를 나는 너를/ 계속 읽고 싶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읽고 싶어/ 해져 찢어질 때까지” (박소은 ‘너는 나의 문학’ 중)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흘러든다. 은은한 인센스의 향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책장을 넘기다 문득 고개를 들면 창밖의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도시의 골목마다 숨어 있는 독립서점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책방지기의 취향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작은 공간 가득 책과 글귀가 빽빽히 수놓아져 있고, 또 어떤 곳은 달콤한 디저트 향과 종이 냄새가 겹쳐져 느긋한 시간을 선물한다.

지난해 광주 남구 백운동에 문을 연 독립서점 ‘책방 서사’는 책과 문화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집, 혹은 소중히 가꾼 서재를 떠올리게 한다. 까치마을 먹자골목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빨간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출입문 앞에는 큼직한 리본과 함께 비눗방울 통이 놓여 있다. ‘Bubble Free’. 누구나 비눗방울을 불어볼 수 있게 해둔 귀여운 장치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잠시나마 쉬어가길 바라는 책방지기의 배려가 느껴진다.

책방 서사의 주인은 스스로를 ‘병아리 책방지기’라 부르는 이혜미 씨다. 그는 “책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잇는 공간”이라고 책방을 소개했다. ‘서사’라는 이름은 ‘서로 사랑하세요’의 줄임말로 고(故)김수환 추기경의 가르침에서 따왔다. 각자의 사랑과 각자의 이야기가 포개지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 씨는 원래 금융업을 다루는 법인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책과 문화를 좋아해 독립서점과 북카페, 소공연장을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언젠가 자신만의 서재와 작은 서점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연한 바람에 머물러 있었다.

손님들을 위한 ‘오늘의 책 뽑기’ 게임.
“호호 할머니가 되면 작은 책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그런데 회사 생활 3년쯤 지나니까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똑같이 흘러갈 시간들을 떠올리니, 이 꿈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지난해 1월, 이 씨의 꿈을 담은 책방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초보 책방지기에게 모든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그는 한동안 직장 생활과 책방 운영을 병행해야 했다.

“처음에는 퇴근하고 바로 책방으로 와서 밤 11시까지 문을 열고, 다시 집이 있는 광산구 첨단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정말 피곤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든 만큼 즐겁기도 했어요. 잠깐 문을 여는 시간에도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꿈꾸던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올해부터는 회사를 퇴사하고 전업 책방지기가 됐다.

신생 책방이 자리를 잡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존재는 다름 아닌 손님들이었다. “책방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한 손님이 자신이 소장한 미술 작품을 전시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집에만 걸어두기엔 아깝다면서요.”

그 인연으로 지난해 7월 ‘조금 모자란 전시회’가 열렸다. 손님이 소장한 작품 여섯 점과 그에 어울리는 독립출판물을 함께 큐레이팅한 자리였다. 이후에도 마니또 방식의 책 교환 프로그램 ‘문장잇기’ 등을 함께 기획하며, 그는 책방 운영의 방향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다. “책방을 하면서 고민을 나눌 동료들이 생긴다는 게 참 신기하고 든든했어요.”

비눗방울을 부는 책방지기 이혜미 씨의 모습.
이 씨는 책방을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문화가 오가는 자리로 키워가고 있다. 음악가 친구들과 함께한 기부 콘서트, 인문학 프로그램 ‘고전으로 떠나는 심리학 여행’,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토크 프로그램 등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부터는 도서출판 ‘다인숲’과 손잡고 작가와 시민을 잇는 프로젝트 ‘책 바람 불어넣기’를 시작한다. 첫 순서로 오는 24일 오후 3시 열리는 ‘책, 낭독의 향기’에서는 ‘얼굴 없는 아침’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김현주 소설가와 독자들이 함께 모여 문장을 낭독하고, 책의 여운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광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면서 늘 고민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지역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고요. 앞으로 책방 서사가 지역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와 음악가 등 예술인, 그리고 시민들을 잇는 하나의 ‘게시판’ 같은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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